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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1/20,주일-오후) "성경의 위로" / 롬 15장 4절 / 고한율목사

(11/20,주일-오후) "성경의 위로" / 롬 15장 4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200 장, 484 장

161120_성경의위로-고한율목사.pdf



 오늘은 추가감사주일이면서 또한 전교인 성경퀴즈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전교인 성경퀴즈대회를 하는 이유는 우리 중에 누가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는가를 가려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이런 행사를 통해 우리가 성경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자는 취지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성도님이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올해에 이미 성경을 3독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한 두 달 전에 올해에만 성경을 5독 이상 했다고 하는 분도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연초에 모든 성도들이 올해에는 1독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성경읽기표를 나눠드렸는데, 벌써 성경읽기표를 몇 번 다시 가져가신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목사로서 마음이 참 기쁩니다. 


 이런 표어가 있지 않습니까? ‘불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교회에 적용해 보면 ‘성경 읽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생활과 교회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큰 권위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보다 더 큰 권위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주장을 해도 성경 앞에서는 입을 막아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1박 2일 동안 정책 당회를 다녀왔습니다. 저와 네 분의 장로님들이 함께 모여서 2017년 교회와 관련 된 여러 사안들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안건에 대해서는 쉽게 뜻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몇몇 안건에 있어서는 생각이 달라서 오래 동안 조금은 격렬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제 마음에 큰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장로님들이 어떤 것을 결정할 때,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라고 한다면 자기의 뜻을 기꺼이 내려놓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책당회를 하면서 성경이 가장 큰 권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담임목사라고 해서 더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 긴 세월 교회를 섬긴 장로님이라고 해서 더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모두가 연약하고 부족하다 하더라도, 성경이 우리의 최고 권위라는 사실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뜻대로 교회를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과 교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을 말씀에 보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유익 중에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그러나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구약성경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이 무엇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말씀합니까?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기본적인 유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우리에게 지식적인 교훈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머리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채워줍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성경의 위로”라고 표현을 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위로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십니까? 성경읽기표에 표시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읽습니까? 물론 안 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마치 숙제하듯이 억지로 성경을 읽는다면 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단지 우리에게 지식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깨지고, 상하고, 움추려든 우리의 심령에 큰 위로를 줍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고 하면 그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대부분이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하면 마치 법전이나 명령문처럼 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 말라로만 읽는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성경에서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헌법책을 보면서 위로 받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헌법책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 안에 율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성격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만을 담은 책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딱딱한 율법 조항이 아니라,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상관없는 마치 신화와 같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을 이야기라고 할 때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담긴 위대한 구원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위대한 구원이야기 속에 먼저 등장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지금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곧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지금 믿는 하나님이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을 보면서 딴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성경인물들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사용하셨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브라함과 모세, 바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 대해서 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 보면 우리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모두가 우리처럼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은혜 주시고, 능력 주셔서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은혜 주시며, 능력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렇게 읽을 때 성경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욱 강력하게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은혜로 대하시며,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위로의 성경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안에서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없는 아브라함을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고, 비겁한 기드온을 위대한 용사로 만드시며, 죽은 오빠 때문에 절규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오빠인 나사로를 부활시킴으로 소망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참된 위로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