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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1/13,주일-오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 마 4장 1 ~ 4절 / 고한율목사

(11/13,주일-오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 마 4장 1 ~ 4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 장, 74 장, 368 장, 620장 1절  // 교독문 : 92번(성찬 2)

161113-(성찬)사람이 떡으로만 살것 아니오-고한율목사.pdf




 제가 대학생 때 읽었던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에 한 가난한 여자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카렌이었습니다. 카렌은 작곡가였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밤무대에 나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여 그 받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카렌은 전도를 받게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카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이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카렌은 이 말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어떻게 하면 구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카렌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 마시고 춤추는 사람들을 위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한 일이었지만, 이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카렌은 밤무대에서 피아노치고 노래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생계가 막막했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받은 감동으로 노래를 하나 작곡하였는데, 그 노래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찬양입니다. 이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불러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카렌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해서 밤무대를 그만 두기는데 했는데 대책이 없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찬송가를 전문으로 녹음하는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는데, 카렌이 작곡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구하라”는 찬양을 음반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렌은 놀라서 그 곡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는데, 카렌이 교회에서 그 곡을 부르는 것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렌이 작곡한 노래는 녹음이 되어 음반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카렌은 그 곡의 저작료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렌은 이 일을 통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2절 가사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 말씀으로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1절 가사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와 2절 가사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사실상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찬이 가진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시고 피 흘리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 먹고 마시는 떡과 잔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긴 몸과 흘린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찬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안에 더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 떡을 먹지 않습니까? 이 떡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찢기신 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주시는 양식을 뜻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6: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5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떡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먹는 자만이 영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영생한다는 뜻은 단순히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영생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복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그 자체는 절대 복이 아닙니다. 군대에 다녀 온 남자 성도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제대한 후에 꾸게 되는 꿈 중에 가장 끔찍한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시 군대에 입대하는 꿈입니다. 저도 딱 한 번 꾼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꿈속에서도 ‘이것은 꿈일 거야, 이것은 꿈일 거야’ 그렇게 되뇌었습니다. 정말로 끔찍한 악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군대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해 주겠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산다고 할 때, 그 곳이 지옥이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영생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뜻합니다. 이러한 영생은 누구나 꿈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기쁨, 평안이 넘치는 가운데 영원히 사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천국의 삶이라고 하고,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생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습니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없습니다. 권력이나 명예로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먹어야만 영생을 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먹어야 한다고 할 때, 그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식인종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의 살을 먹을 수 있는가? 혹 그의 살을 먹었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자, 예수님께서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63~64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떡이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을 먹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라고 말씀합니다. 진짜 살을 먹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먹는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하신 후에 곧바로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성찬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성찬을 받지 않는다면 성찬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찬을 먹는 그 자체로 어떤 효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성찬을 하지 않으면 떡은 그저 떡이고, 포도주는 그저 포도주일 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성찬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함으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 즉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단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게 함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어 이 땅에서 복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찬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광야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광야는 쉽게 말해서 사막지역으로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고, 그 곳에서 무려 40년간을 지내게 하셨습니다. 몇 명의 사람도 쉽게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수백 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지냈던 것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만나였습니다. 이 만나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만나에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통기한이 단 하루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슬처럼 새벽에 만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는 곳에 뿌려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서 만나를 모아옵니다. 그런데 그 모아 온 만나는 그 날 하루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희한한 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만나를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매일 매일 살 수 있는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새벽에 나가서 만나를 가져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만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교육 도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신명기 8:3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씀합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신 것은 “너희가 사는 것은 너희의 힘으로, 너희의 소유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도록 하는데, 실제로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 즉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 그의 역사, 섭리, 보호, 은혜, 사랑, 이 모든 것으로 우리가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후로는 모든 사람들이 잊어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최초의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명히 금지하신 열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먹었습니다. 왜 먹었습니까?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유혹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내 힘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선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죄와 죽음 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은 인간에게 참된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은혜, 복으로부터 끊어져 비참한 삶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마치 물속에서 참된 자유와 풍성한 삶을 살던 물고기가 물이 답답하다고 하여 육지로 올라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물고기에게 주어지는 것은 비참한 삶과 죽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와 죽음 가운데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은혜를 받을 때 우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통해 가르쳐 주고자 한 것이 이것입니다. 너희가 사는 길은 나를 의지하는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나타나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시험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에게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여기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은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맞거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내가 안다. 그러니 네 능력으로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능력으로 얼마든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으니 40일 동안 배고픈 너의 배를 너의 능력으로 채우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마귀의 간교한 유혹이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네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고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유혹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 없이 네 힘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유혹과 다르지 않습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라고 뱀이 유혹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너희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그러면 네 능력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바로 신명기 8:3절 말씀으로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 모두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삶의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내 힘과 지혜, 내가 가진 것을 의지할 것인가? 그 선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항상 많은 고민과 염려 가운데 살아갈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것 없이 한숨과 불평,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결국은 내 힘과 지혜,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 힘과 지혜가 부족하고, 내가 가진 것이 보잘 것 없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까봐 우리는 그렇게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안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삶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먹는 떡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먹고 마시는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먹는 떡은 비록 작은 떡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오병이어 사건처럼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작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어린 아이의 도시락에 불과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 손에 올려지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 오천 명의 남자가 먹고도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성찬의 떡은 비록 작은 떡이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오늘 성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영생, 즉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