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 설교

(01/03,주일-오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 요 6장 47 ~ 51절 / 고한율목사

(01/03,주일-오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 요 6장 47 ~ 51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1 장, 272 장, 436 장, 54 장

160103_0성찬_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고한율목사.pdf

 201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의 생업을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예배는 이처럼 새해 첫 주일을 맞아서 신년 감사예배로 드리면서, 또한 성찬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계획을 하게 될 텐데, 성찬식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던 시작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절반의 일은 한 셈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시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시작하면 안 됩니다.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무조건 시작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목사이다 보니까 유니폼을 입습니다. 양복을 입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양복을 입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와이셔츠를 입어야 하는데, 그 많은 단추를 일일이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급해서 막 단추를 채우다 보면 꼭 끝에 가서 단추가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추는 있는데, 채울 구멍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면, 첫 단추를 잘 못 채운 것입니다. 첫 단추를 두 번째 구멍에 채운 거예요. 그러면 줄줄이 밀려서 끝에 단추만 남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단추 다 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시작하면 안 됩니다. 시작을 하되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새해에 우리가 품는 생각이나 계획 또한 처음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인생의 방향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먼저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 성도는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땅의 것을 찾거나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것은 무엇이고, 이 땅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요한복음 6장 앞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오병이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너무 많아서 그저 마을 어느 한 구석에서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일, 이 만 명이 넘는 엄청난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나 해변 가에서 백성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 날도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날이 어두워져 가고, 백성들 또한 많이 허기지게 되었습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누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백성들을 빨리 마을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건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있는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백성들을 그저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떡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떤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른 한 명이 먹기에도 부족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백성들을 모두 자리에 앉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신 후에, 그것을 제자들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분명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었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그것도 넉넉하게 떡과 물고기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떡과 물고기를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눠주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처럼 오병이어로 수많은 백성들을 먹이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풍성하고 복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다릅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언제나 가난이 있고, 모자랍니다. 그래서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무한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부요하고 풍성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부요하고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요함과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부족함이 없고,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말씀으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하신 기적이 바로 오병이어 기적이었습니다. 


 배고픈 수 만 명의 백성들이 빈들에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그 가운데 임하니까 모두가 배부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아서 12 바구니에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과 풍성함을 잘 보여 주는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배고픈 그들의 배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바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알고, 그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안에서만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유함과 풍성함 가운데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복되고 풍성한지를 실제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시면서 백성들에게 기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떡과 물고기를 먹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풍성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이런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병이어로 배불렀던 백성들은 예수님의 바람대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땅에서 배부르게 사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26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땅에서 배부른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6:15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 때문에 배가 부른 백성들은 예수님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떡과 물고기를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어 자신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직 이 땅에서 배불리 먹고 살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백성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이런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왜 교회에 다니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성도인 우리들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해 올바르게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오병이어를 체험한 백성들에게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배부르게 해주기 때문에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왜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우리 가정에 좋은 일만 생기고, 아픈 몸이 나아서 건강해 지고, 사업도 잘 돼서 돈도 많이 벌게 되어서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 백성들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이 배고프고 가난한 우리를 배부르게 해 주니까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결코 바라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런 믿음 가지라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도망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임금 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 기적을 통하여 우리 성도가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재물이나 권력, 명예, 인기 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 즉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 생활하는 것은 결코 이 땅에서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풍성함 가운데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영생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생을 영원히 사는 것, 즉 시간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영생이 그저 영원토록 죽지 않고 사는 것이라면 지옥에 가는 사람도 영생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영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영생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삶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하나님의 풍성함과 부유함 가운데 가장 복되게 사는 삶을 바로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을 다른 말로 하면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을 말씀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4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어떤 사람이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합니까? 믿는 자입니다. 여기서 믿는 자란 아무 것이나 믿는 자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믿는 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48절을 보시면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51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면서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즉 나를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어야 우리가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니 이것이 무슨 말일까? 우리가 식인종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을 먹는다는 말인가? 이것은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듣던 당시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6:5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백성들은 예수님이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절대 이상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진짜 그 육체를 먹는다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47절을 다시 보시면 어떤 사람이 영생을 가진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믿는 자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51절에서는 예수님을 먹는 자가 영생을 가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먹는 것은 결국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왜 그냥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만 말씀하시지, 굳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시고, 그것을 먹어야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저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믿음이 아니라, 마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아주 구체적인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고 하면 먼 훗날 우리가 죽어서 가는 장소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 삶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해서 생각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은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후에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던 백성들의 신앙과 똑같이 됩니다. 지금 당장 내 삶이 편해지고, 부유해 지는 것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땅의 것들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성도가 비록 이 땅에 여전히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영생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47절을 보세요.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 받을 것이다’라고 절대 말씀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이미 받았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생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먼 훗날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들어와서 누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가 알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부유함과 풍성함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돈이 힘이 아니라, 권력과 인기가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며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태복음 6:33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복잡하게 꼬여 있고, 여전히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을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인기로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온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풍성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다른 모든 것들은 저절로 채워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우리들에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들은 이 순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아래에 있는 것, 이 세상의 속한 것들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그저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찬식을 하면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것입니다. 여기서 떡과 포도주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의 몸인 떡을 먹습니까? 그 예수님의 몸이 생명의 떡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을 먹을 때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떡을 먹으면서 우리가 이미 영생을 얻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영생을 얻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저 우리의 배를 만족시키는 떡이 아니라,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새해에 가져야 할 삶의 올바른 방향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까를 구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영생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계십니까? 오늘 성찬을 대하면서 특히 떡을 먹을 때 우리가 예수님을 먹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찾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채워야 할 첫 단추입니다. 이 단추가 제대로 채워진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크고 복된 것들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순서가 뒤집어지면 안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 먼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새해를 맞이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과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