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주일-오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 고린도전서 3:16~17 / 고한율목사
찬송가 : 40 장, 384 장, 210 장, 53 장
151227_1_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한율목사.pdf
미국의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 필립 얀시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책이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었는데, 참 좋은 책이 많습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 책 제목은 “Church, why bother?” 즉 ‘교회, 왜 나를 괴롭히는가?’인데, 책 전체 내용을 따라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났던 이야기와 그래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그리고 돌아온 교회에서 적응한 이야기, 교회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처럼 필립 얀시에게 교회는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면서도 또한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증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분노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아마 우리 중에도 필립 얀시의 책 제목처럼 교회가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신 분이 많은 줄로 압니다. 제가 은곡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많은 성도님들을 만나서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항상 느낀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깊은 사랑만큼이나 교회에서 상처 또한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는 우리에게 사랑이면서 동시에 고민이었습니다. 교회가 그저 우리의 사랑이면 좋을 텐데, 우리의 고민이 되는 이유는 교회가 가진 여러 연약한 부분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연약한 부분들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의 참 모습,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교회의 참 모습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점점 닮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고민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에 대한 우리의 고민에는 답이 있을까요? 교회는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사랑만이 아니라, 고민의 대상으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주장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며, 훨씬 복되며, 훨씬 소망이 가득한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비록 현실의 교회는 여러 많은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얼룩져 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교회를 원래 계획하셨던 복된 모습으로 세워 가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일관되게 주장하듯이 교회는 하나님 자신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반드시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상의 소망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사랑으로 풍성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던 마틴루터킹 목사님이 했던 말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틴루터킹 목사님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철저하게 차별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사실 이 꿈은 당시에 어떤 사람도 생각지 못한 허황된 꿈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흑인 노예의 자녀가 백인 주인의 자녀와 함께 손잡고 놀 수 있다는 말인가? 백인들뿐만 아니라, 흑인들조차도 허황된 말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인 오바마입니다. 마티루터킹 목사님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한 것이 1963년이었는데, 불과 50년이 안 되어,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실의 교회는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상처 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은 결코 허황된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대한 소망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고민거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실 일들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본문말씀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의 본질을 바르게 알 때, 성경이 말씀하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본질을 바르게 알 때,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내용들을 분별하고, 고쳐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 특별힌 3:16절 말씀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에 관한 2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합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건축할 때 성전건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만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4: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여기서 유다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소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 하나님의 영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말씀과 똑같은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성전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강대상이 있고, 성가대석이 있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바로 성도인 우리들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교회 건물이 필요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교회 건물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교회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모여 있는 성도들,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약 교회를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혹은 조직으로만 이해한다면 한국교회만큼 훌륭한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대단한 교회건물이 많은지 모릅니다.
벌써 꽤 오래 전 일인데, 제 군대 고참을 따라서 서울에 있는 어떤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얼마나 큰지 그 앞에서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본당에 허락을 받아 들어갔는데, 규모도 엄청났습니다. 그 안에 20억짜리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고, 더 놀라운 것은 자리마다 이어폰을 꼽는 곳이 있었는데, 예배 시간에 여러 나라 말로 동시통역을 해 준다고 했습니다. 정말 국제회의를 해도 좋을 만큼 시설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예배당을 가진 교회가 지난 몇 년 동안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분쟁이 붙어서 서로 소송을 하며 몰락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눈에 보이는 예배당이 교회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정말 최고의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그 교회를 최고의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도인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에베소서 2: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함께 지어져갑니까? ‘너희’라고 말씀합니다. 즉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벽돌을 놓고, 철근을 세워서 될 일이 아니라, 바로 성도인 우리들이 함께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갈 때, 교회가 같이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 혼자만 성장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같이 성장해야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이 키가 부쩍 부쩍 자라지요. 그런데 만약 오른쪽 다리는 일 년에 10cm가 컸는데, 왼쪽 다리는 5cm 밖에 크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사람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다리만 자라서는 안 되고, 팔도 자라야 하고, 몸통도 자라야 하고, 머리도 자라야 합니다. 함께 성장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성도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돕는 일입니다. 나만 잘한다고 교회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기다려 주고, 서로의 연약함을 덮어주고, 서로를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성도가 바르게 서지 못한다면 나도 바르게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분트(UBUNTU)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프리카 한 부족을 연구하던 학자가 어느 날 아이들과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저 앞에 있는 나무에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과자를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를 해서 제일 먼저 도착한 아이가 그것을 먹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어떤 아이도 먼저 뛰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모든 아이들이 손을 다 잡고 과자가 있는 나무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과자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학자가 너무나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빨리 가면 과자를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이 때 아이들이 함께 우분트 (UBUNTU)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우분트는 ‘너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랍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한데 어떻게 혼자만 행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나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고,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도인 우리들입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근사한 예배당을 갖고 있더라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일에 힘쓰는 교회라면 우리의 형편이 어떻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주님보시기에 그 교회야말로 가장 건강한 교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 사실을 깊이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알고, 말하는 사람하고만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다가설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다가가 격려해 주시고, 먼저 다가가 섬겨 주시고, 먼저 다가가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은곡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도 바울은 교회의 두 번째 본질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인 너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전인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성령님께서 성전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이루고 있는데, 그 성전의 주인이 성령님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전의 주인, 즉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께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님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는 일을 합니다.
사도행전 13:2~3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것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세워 파송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까?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고, 교회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 성령님이라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아닙니다. 또한 교회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도 주인일 수 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성령님입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의 인도와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교회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무엇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즉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 안에서 성경말씀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께서 바로 성경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최고 권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성경말씀 앞에서 순종할 때,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교회 가운데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교회를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둘째는 성령께서 교회의 능력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능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도의 숫자에 있을까요? 헌금의 액수에 있습니까? 교회가 하는 여러 가지 사업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바로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의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구약 에스겔서 40~47장에 보면 에스겔의 성전환상이 나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이미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당연히 성전도 파괴되어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에스겔에게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실 새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47장에 보면 에스겔이 성전에 있을 때, 성전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바닥에서 스며 나왔는데, 조금 지나니까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또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물이 허리까지 오르고, 나중에는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물이 솟아 나와서 그 물이 바다까지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전에서 솟아난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하는 점입니다. 에스겔 47: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전에서 난 물이 닿는 곳마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모든 생물들이 살아나고 고기가 심히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바닷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바다를 혼돈의 세계로서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들이 바로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다는 악의 세력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저주와 절망과 죄악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물이 그 곳으로 들어갈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되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는 데, 이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성령님입니다. 물은 바로 성전의 주인이신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능력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성령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의 참된 능력이 되십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우리 은곡교회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서 절망과 상처,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그 능력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성령님의 회복하시는 큰 능력의 강물이 우리 모두를 덮을 줄로 믿습니다.
성전에서 나온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 교회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힘은 사람에게나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힘은 오직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여 늘 기도할 때, 성전에서 솟아난 물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흘러넘칠 줄 믿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장,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에 넘칠 줄을 믿습니다. 그것을 통해 생명과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3:16절을 중심으로 교회의 두 가지 중요한 본질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그리고 교회의 주인은 성령님이시며, 그렇기에 교회는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과 교회의 참된 능력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우리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이 교회의 주인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능력주심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이 교회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와 능력을 의지하여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워 가실 정말 멋진 교회를 함께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을 마무리하고, 2016년을 준비하는 오늘, 하나님께서 교회의 본질에 관한 말씀을 주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뜻이 생각하며, 더 이상 나의 고민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사랑, 나의 소망, 나의 기대로서의 교회로 우리 교회를 세워나가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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