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주일-오전) "교회 세우기" / 고전3장10~15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9 장, 105 장, 204 장, 53 장
151213_1_교회 세우기-고한율목사.pdf
우리가 주일마다 살펴보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픈 환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사람들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이 고린도 교회의 형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진단입니다. 둘째는 그 진단을 따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치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까지 살펴본 내용은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교회 안의 시기와 분열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서로 편이 나눠져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을 따라서 편이 갈라졌습니다. 바울을 따르는 바울파가 있었고,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따르는 베드로파가 있었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는 네 개의 파로 나눠져서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보면서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처럼 분열된 이유는 고린도 교회 안에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성도인 것은 맞지만, 영적으로 성장이 멈춘 어린 아이 같은 성도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많았습니다.
교회 안에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가득하니 당연히 교회가 시끄럽고, 그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연약함을 덮어주고, 묵묵히 참아주는 것은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많으면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있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핵심적인 문제가 영적인 성장을 멈춘 어린 아이 같은 성도에 있다고 정확하게 진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진단만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바울의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교회가 가진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끼리 모여서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잘못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이렇게 계속되면 교회에 큰 일이 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입니다. 문제를 보고 지적하고, 판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제 우리교회에서 새가족 환영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 새신자가 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통계적으로도 기독교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마다 새신자 등록이 점점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새신자에 관한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아는 것으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새신자가 와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새신자가 중요하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새신자가 왔는지 갔는지 잘 모릅니다. 적어도 장로님이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은 교회에 등록한 새신자의 얼굴과 이름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찾아가서 말도 건네고, 교회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고,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신자가 중요하다고 말만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만 지적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하다면,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책망만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지적한 후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살펴본 것처럼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바로 앞에 있는 9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이 최고라고 주장하면서 싸우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따르는 지도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동역자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너희는 누구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초점은 너희가 자랑하고 따르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이죠. 바울도 아볼로도 너희를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도자들을 따라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일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영적으로 성숙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갈 때 세상의 것들로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시며, 고치시며, 살릴 분이라는 고백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상한 심령, 깨어진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 바로 깨어진 마음입니다.
이처럼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신앙의 성숙이란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알게 되고, 기도를 오래 동안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마음을 적게 먹고, 죄를 덜 짓는 것이 신앙의 성숙이 아닙니다. 신앙의 성숙이란 자신의 죄와 연약함, 부족함을 철저하게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런 나를 구원하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만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적인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에 벗어나 영적으로 성숙하여 어른 신앙을 가져야 하는다는 것이죠. 그럴 때 고린도 교회가 가진 분열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교회도 건강해 지고, 영적으로도 더욱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은곡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은곡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이 있다면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서, 점점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성장은 시간이 지난다고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키가 자라고, 정신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려면 좋은 음식을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정신이 성숙해지려면 계속해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숙한 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성숙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더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경건의 훈련에 더욱 힘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사모하고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또한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리고, 또한 주신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사도 바울은 이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이것과 관련해서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가를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교회를 건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건물 세우는 과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건물을 세우기 전에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까요? 건물을 세울 터를 정하고, 그 터를 잘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건축 재료들을 사서 건물을 실제로 지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세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터를 정하고, 닦는 것이며, 그런 후에 여러 재료를 가지고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교회 세우기와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건물 제대로 짓기 위해서 터가 중요하듯이,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도 터가 중요합니다. 터가 부실하면, 그 위에 아무리 대단한 건물을 세워도 소용없습니다. 조금의 충격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고린도 교회의 터를 잘 닦아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인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터를 닦는 일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마련한 터는 무엇이었습니까?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닦아 둔 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있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즉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그것이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 같아도, 교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신천지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한국교회는 모두 타락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 교회의 터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천지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신천지 교회는 이만희가 그 교회의 터이고,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과 그의 아내 장길자가 그 교회의 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만약 다른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면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짓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터를 어떤 사람이나, 혹은 어떤 신학, 전통 등에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높이거나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만이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교회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은곡교회가 세워진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제나 예수님만이 우리 교회를 다스리고, 성도인 우리들은 예수님만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라지지 않는 재료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 터 위에 어떤 재료를 가지고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기에는 6가지 재료가 나와 있습니다. 금과 은, 보석이 있고, 나무와 풀, 짚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6가지 재료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불에 타지 않는 재료와 불에 타는 재료입니다. 먼저 금와 은, 보석은 불에 타지 않는 재료입니다. 그리고 나무와 풀, 짚은 불에 타는 재료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금이 더 귀한 것이냐, 나무가 더 귀한 것이냐가 아닙니다. 불에 타느냐 타지 않느냐 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13절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불에 타느냐 타지 않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가 한 일이 불로서 시험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금, 은, 나무와 같은 재료들은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한 일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공적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가 교회를 위해 한 봉사나 섬김, 헌신 등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사람은 금과 같은 봉사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은과 같은 헌신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무나 풀 같은 섬김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사와 헌신, 섬김들이 모여서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즉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가 제대로 세워졌는가 시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시험하는가 하면 바로 불로서 시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에게 상이 줄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4~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 받은 것 같으리라”
예수님이 마지막 날 불을 가지고 교회를 시험하실 것입니다. 당연히 금이나 은, 보석과 같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교회를 건축한 성도들은 그 세운 교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나무나 풀, 짚으로 교회를 세운 성도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 불에 타서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평생 해 왔던 일들이 그야말로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가 이 말씀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불에 다 타버리도록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 받은 것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받습니다. 하지만 불 가운데 받는 것 같다, 즉 겨우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둘째로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교회를 건축한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보다 더 큰 상급을 천국에서 받게 되겠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해입니다. 모든 성도가 받는 구원은 그 자체로 완전한 구원입니다. 누가 누구보다 더 나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상은 공적이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힘써서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에게 봉사한 것들이 주님 앞에서 불에 타지 않고, 모두 남아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금과 은, 보석으로 교회를 건축한 성도들이 받게 되는 상입니다.
이런 두 가지 오해를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는데, 무엇을 하든지 사라질 재료가 아닌 영원히 남을 재료로 교회를 세워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질 재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나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높이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 봉사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나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칭찬과 명성을 얻기 위해서 헌신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말 그 사람의 열심과 헌신을 칭찬하고, 그래서 큰 명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뿐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불로 시험할 때, 자기를 위해 한 모든 봉사와 헌신, 섬김은 나무와 풀, 짚과 같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빈손으로 겨우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은 언제나 부인하고,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만을 높이는 봉사와 헌신입니다. 봉사와 헌신의 목적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그 베푸신 사랑이 너무 귀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드리고 또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봉사와 헌신입니다. 이와 같은 봉사와 헌신은 그야말로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이 불로 타지 않는 영원한 교회의 재료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까? 그냥 방관자처럼 그렇게 지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우리가 함께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들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어느 몇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 모두가 함께 건축자가 되어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몫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정말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재료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까? 불에 탈 재료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타지 않는 재료입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영원히 타지 않는 재료로 우리 교회를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한 젊은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었습니다. 그 집에 딸이 있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아?”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첫째이고, 둘째는 누구이고..”집사님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답을 들은 딸이 아빠하고 오빠, 또 만나는 사람마다 묻었답니다.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가 제일 좋고, 그 다음에 ”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하나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야지 하고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참 기특하잖아요. 제가 속으로 그 아이를 주일 예배할 때 입구에 세워두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좋아요?”라고 물을 수는 없잖아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고, 어떤 사람은 돈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지 않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분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봉사와 헌신, 섬김은 모두 불타 없어질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 봉사와 헌신은 다 불에 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봉사와 헌신, 섬김으로 세워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내가 아닌 오직 예수님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교회는 든든하게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우리 교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교회를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와 성도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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