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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2/06,주일-오후) "마태가 전하는 성탄이야기" / 고한율목사

(12/06,주일-오후) "마태가 전하는 성탄이야기" / 고한율목사

찬송가 : 96 장, 104 장

151206_2-마태가 전하는 성탄이야기-고한율목사.pdf


 오늘부터 3주간에 걸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각각 전하는 성탄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을 제외하고 마태, 누가,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해 주는 내용들의 강조점들이 각각 다릅니다. 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태와 누가, 요한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성탄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복음서를 차례대로 살펴봄으로써 성탄사건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마태가 전하는 성탄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마태복음이 전하는 성탄 이야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면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중요성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가 전하는 성탄 이야기에서의 중심인물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마태가 아버지인 요셉을 중심으로 성탄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살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이 처음에 무엇으로 시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1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여기서 계보라는 말은 족보책이라는 뜻입니다. 즉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절에서 밝히듯이 예수님의 족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 두 사람, 아브라함과 다윗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구성합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이 말씀에 보는 대로 예수님의 족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마태복음이 이처럼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피를 물려 받았다는 정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수요예배에 나오시는 성도님들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으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땅과 큰 민족과 세상의 복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땅과 큰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복이 되리라는 것은 무엇에 필요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나라를 세울 때, 그 나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이냐? 바로 이 세상을 복되게 하기 위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을 세운 나라를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주신 세 가지 약속이 언제 성취가 되었습니까? 바로 모세 때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셨습니다. 모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인 숫자만 60만명에 달하는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땅도 주었습니다.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곳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약속 중 땅과 큰 민족이 되리라는 약속이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약속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세상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실패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전하는 나라가 되기를 커녕 오히려 주변 나라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에 얼마나 빨리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이 사사기 말씀은 내년에 오후찬양예배 때마다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온 세상을 구원하려는 일을 하려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2대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주변 나라들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언약의 내용이 나오는데, 16절에 보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왕조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과 달리 다윗의 왕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손자였던 르호보암 왕 때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쪼개어 집니다. 북쪽의 북이스라엘과 남쪽의 남유다로 분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나라 모두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이방민족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그 후로 약 130년 후인 B.C. 586년에 남유다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바벨론에 끌려갔던 남유다 백성들을 70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독립된 나라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네 왕조가 영원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틀렸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나라가 망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구원자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이 와서 다시 왕국을 세울 것을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입니까? 너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윗의 후손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을 보내어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인데,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 마태가 족보를 처음부터 길게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태가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요셉을 중심으로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 말씀은 마리아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요셉이 당황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이 때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을 한 사이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약혼은 오늘 우리가 하는 약혼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약혼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만 제외하고 정식적으로 부부 사이가 되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즉 약혼을 하면 법적으로는 이미 결혼을 한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부부관계만을 갖지 않는 것만이 다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이처럼 약혼 관계에 있을 때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생각할 때, 마리아가 부정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요셉에게 이 일은 얼마나 충격적이고, 괘씸한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약혼을 깨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할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의 임신이 사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주의 사자가 요셉을 어떻게 불렀는가 하는 점입니다. 20절에 보면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냥 요셉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요셉을 부를 때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이제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아이가 바로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보통의 다윗의 자손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다윗의 자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부관계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35절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성령의 잉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아주 특별한 다윗의 자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은 단순히 그의 조상이었던 다윗이 했던 일과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다윗은 주변의 적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아주 잠시 잠깐의 구원일 뿐입니다. 결국 다윗이 죽고 난 후 몇 백 년이 안 지나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이며, 성령의 잉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예수님은 다윗과는 전혀 다른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영원한 평안도 없고, 안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정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인류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진정한 구원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죄로 말미암아 멸망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탄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약속하신 그 구원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담 때부터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시고, 다윗을 통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그 약속을 드디어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탄생이 이미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예언되었고, 그것이 이렇게 성취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신 하나님입니다. 그저 말로만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성취함을 통하여 그 사랑을 증명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약속하신대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대로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성도가 복되게 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라기는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언제나 그 말씀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약속대로 이처럼 다윗의 자손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 또한 반드시 이뤄질 것을 믿고, 항상 깨어서 신앙생활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성탄의 귀한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