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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2/31,목) 송구영신 /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시 57편 1 ~ 11절 / 고한율목사

(12/31,목) 송구영신 /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시 57편 1 ~ 11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01 장, 17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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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교회 표어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정한 이유는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2016년 한 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넘치고, 또한 은곡교회 가운데 넘치고, 각 가정 가운데 넘치고, 생업 가운데 넘치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바라는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진통제 같은 것으로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진통제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통증을 멈추게 하는 약입니다. 아픈 곳을 고쳐서 통증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잠시 동안 못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통제를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픕니다. 병을 고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진통제가 아닙니다. 아픈 것을 잠시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치료제입니다. 상한 곳을 온전하게 하고, 찢어진 곳을 싸매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풀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회복되고, 고쳐지며,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이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지날 때였습니다. 그 때 엄청난 폭풍이 배를 덮쳤습니다. 얼마나 위력이 강했는지, 배가 깨어질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것 같으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제자들 중에 4명이 바로 이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보다 갈릴리 호수를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곳입니다. 그들은 베테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몰아치는 폭풍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경험도 지혜도 힘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까? 목수였던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제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돈과 지혜와 힘으로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갈릴리 호수를 자기 집으로 삼아 일하던 제자들이 몰아친 폭풍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듯이 우리 또한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폭풍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57편 말씀은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린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을 보시면 57장 1절 바로 위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이것을 우리는 표제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표제어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을 누가 썼으며, 또한 언제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7편의 표제어에 따르면 이 시편은 다윗이 썼고,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이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피난하고 있을 때 기록한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보면 이 시편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투를 하던 중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멈추고, 지체 없이 3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엔게디 광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얼마나 다윗을 끔찍하게 미워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울이 다윗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적군과 전투하다가 말고, 다윗을 죽이러 달려갈 정도였습니다. 이런 사울 왕의 위협이 얼마나 다윗에게는 큰 두려움이었을까요? 여러분 한 나라의 왕, 우리 식으로 하면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가 나 하나 잡자고 수 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누구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골리앗을 죽인 천하의 다윗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뭐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간절했던지 한 번 더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두 번이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 것은 그만큼 지금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삼 천 명의 군사가 오직 나 하나만을 잡기 위해서 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갈릴리 호수에서 폭풍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라고 외친 것처럼, 다윗도 지금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다윗이 경험한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삼 천 명의 군사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것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저 눈물과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제가 목사이다 보니까 인생의 큰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 고난을 당하시는 분들도 적잖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그 고난에 대처하는 모습은 다 똑같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실 수 있느냐며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나에게 이럴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굉장히 실망하면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반대인 경우도 보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이 오자 오히려 이전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 다윗이 꼭 그러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고난 앞에서 그저 절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나의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다른 곳으로 우리의 도움을 찾으러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의 유일한 도움은 하나님임을 믿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 나와서 은혜를 간절히 구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기도하자마자 모든 문제를 정리해 주셨습니까? 사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이죠.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불치병이 낫고, 기도하기만 하면 없던 돈이 생기고, 기도하기만 하면 방황하던 자녀가 돌아오게 되고, 기도하기만 하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모든 상황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기대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됩니까? 여러분,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한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믿음이 없어서 하는 말입니까? 저만 그런 것입니까? 여러분 중에 “나는 기도하기만 하면 곧바로 다 응답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혹 계십니까?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곧바로 응답하시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기도의 체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지금 다윗이 어디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까?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자신이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워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을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곳과 불사르는 자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달리 다윗의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다윗은 고난 한 가운데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했다고 해서 우리의 환경이 즉시 변화되지 않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어렵게 하는 문제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나는 고난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은 쓸모없는 일일까요? 기도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도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며, 그 은혜는 반드시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기도하는 나를 변화시키고, 그 다음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이 순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사자들 사이에 살고,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워있습니다.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의 태도입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삼 천 명의 군사들과 함께 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은혜를 베푸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다급하고, 두려워했던 다윗이 4절에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워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누워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누워있다는 말의 뜻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시편 4:8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누워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내가 평안하며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무섭고 두려운 데,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해야 누울 수 있는 법입니다. 내가 지금 안전하는 것을 확신할 때에야 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렇습니다. 비록 다윗의 지금 상황은 사자들이 우글거리고, 불사르는 자들이 주변에 있지만, 다윗은 그 안에서 평안과 안전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누워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평안하고, 안전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알았던 집사님 중에도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으셨는데, 말기암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심방을 갔는데,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실에서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렇게 얼굴이 환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환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데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게 드리는지 모릅니다. 정말 은혜 가운데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려 할 때, 그 집사님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합니다. 비록 내 몸이 낫지 못한다 해도 참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큽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보통의 경우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니까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처한 상황보다 먼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도록 만드십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도록 믿음을 주십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데, 이러한 변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 본문 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얼마나 기가 막힌 고백인지 아시겠습니까? 이 고백의 뜻을 알면 다윗이 어떻게 사자들 사이에서, 불사르는 자들 속에서 평안히 누워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모든 것을 이루시되 나를 위해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그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바로 나를 위한 목적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한 세상을 그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나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 대통령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의 내용은 “내가 당신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항상 나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큰 힘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온 세상의 창조주가 바로 다윗 자신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루신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자신 앞에 놓인 정말 두려운 현실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신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곧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세우신 목적이 곧 이뤄질 것입니다. 가장 복된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로마서 8: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즐겁고 행복한 일뿐만 아니라, 지금 다윗이 당하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고난과 시련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것은 모두 과정일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모두 요리의 재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리 재료 중에는 청량 고추나 겨자 같이 맵고 쓴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재료들입니다. 하지만 여러 음식 재료들 속에 이것들이 섞이면 맛이 전혀 달라집니다. 최고의 요리사이신 하나님은 이 모든 재료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만드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지막은 반드시 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바로 찬양을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이 찬양은 다윗이 편안히 왕궁에 누워서 한 찬양이 아닙니다. 삼 천 명의 군사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 때, 동굴 안에서 부른 찬양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런 찬양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고난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귀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국 다윗의 어려운 상황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여러분, 여기에 위대한 반전이 나옵니다. 역전이 나옵니다. 다윗의 적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물을 준비하고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웅덩이에 빠진 것이 아니라, 웅덩이를 판 적들이 오히려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어려운 상황을 역전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폭풍을 잠잠케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한 번 기도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가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믿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2016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무엇보다 2016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먼저는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또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이 변화되는 귀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의 생업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년 표어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