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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1/08,주일-오후) "살전 강해(16)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 살전 5장 19 ~ 22절 / 고한율목사

(11/08,주일-오후) "살전 강해(16)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 살전 5장 19 ~ 22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430 장, 191 장

151108_4_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고한율목사.pdf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신자인 우리에게 주시는 4가지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명령들은 한 번 순종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 순종해야 할 중요한 명령들입니다. 하나씩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입니다. 

      1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여기서 소멸하다는 것은 불을 “끄다”, 혹은 “꺼지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끄거나 꺼지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우리가 성령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성령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감히 끄거나 꺼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감히 인간이 하나님을 마치 불을 끄듯이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성령을 소멸하다는 뜻은 성령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은 ‘성령의 활동을 억누르거나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께서 어떤 활동을 하시는가입니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6: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에, 결국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데, 이것과 관련된 두 가지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영감과 조명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하고, 또한 조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디모데후서 3: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이라고 할 때, 감동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고, 곧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성경은 누가 기록한 것입니까? 바로 성령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세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에게 역사하셔서 그들로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성령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할 때, 이것을 성령의 영감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영감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영감을 통해 우리에게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혀 주셔서 성경의 내용들을 깨닫도록 만드십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조명이란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 책인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철학박사, 문학박사도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지식들을 말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성령이 조명해 주지 않으면 성경을 읽지만,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초등학생이라도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면 성경을 읽고 믿음을 가져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성령님의 조명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해 주시고, 조명해 주셔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전에 살펴본 데살로니가전서 4: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무엇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않는 것이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그 이름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지만,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영이시기에 성령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2절에 보면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따라 살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주시고,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를 깨닫게 만드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서 두 가지 일,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활동, 역사를 제한하지 말라, 억누르지 말라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나와는 상관없는 명령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 여러분 중에 의도적으로 성령님의 활동을 방해해야겠다, 억눌러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성령의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성경 말씀이 부담스럽게 여겨져서 불순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역사하셨던 성령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신가요? 무능력해지셨습니까?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을 소멸하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도무지 읽지도 않고, 설교 시간에는 딴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성도이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더러운 말들과 행동을 똑같이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성령을 소멸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할 때 역사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거룩한 삶을 힘써서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놀랍게 역사하셨던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은 그저 어떤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거룩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단지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삶에 그치지 않고, 성령으로 모두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고, 거룩한 삶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우리를 온전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라고 명령하신 후에 이어서 두 번째 명령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단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 안에서 예언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 전체를 예언이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미래의 일어날 일들보다는 현재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구약학자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선지자들의 예언 중 90% 이상이 현재의 일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10% 정도만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명령은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이 말씀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서 순종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기록된 때와 오늘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은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 나오는 시대나 사람들, 환경 등은 모두 오늘날과 완전히 다를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질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더욱 정성을 들여서 읽고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진리의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성경을 그저 소설책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는 유일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읽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잘 새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그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늘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명령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이것은 우리 신자가 분별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분별력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가를 구별해 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서의 선은 바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선입니다. 반대로 내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악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무엇을 구하라고 하십니까? 내 것을 구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선 구하면 어떻게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더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명령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기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는 말씀은 모든 종류의 악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저 선하게 살면 된다고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삶의 존재하는 아주 작은 악이라도 그것을 심각히 여겨서 버려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다윗이 이 무시무시한 간음과 살인을 오래 전부터 계획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다윗이 낮잠을 자고 한가롭게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목욕하는 여인을 무심코 보았다면 얼릉 얼굴을 돌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것을 주목하면서 그 엄청난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시는 4가지 명령,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고 버리라는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평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평생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