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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9/18,주일-오전) "주를 자랑하라" / 고전 1장 26 ~ 31절 / 고한율목사

(9/18,주일-오전) "주를 자랑하라" / 고전 1장 26 ~ 31절 / 고한율목사 


151018_3주를 자랑하라-고한율목사.pdf


찬송가 : 15장, 294장, 543장, 620장(3절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처음 너희를 부르실 때 너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봐라”라고 말씀합니다. 26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여기서 “보라”라는 말은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처음의 너희 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는 것은 그 속에 책망의 의미가 이미 들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의 모습을 잃고 오만해 지고, 교만해 지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초심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처음 마음, 처음 모습을 잃었다는 것이죠. 


 제가 은곡교회에 4월 말에 부임하였는데, 그 전 1월에 교회에 와서 주일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여러 장로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그 때 한 장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교회에 처음 부임할 때는 열심히 하지 않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것을 봅니다. 만약 오신다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희가 초심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4개의 파로 나눠져서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처음 예수 믿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들 중에는 지혜로운 자도, 능한 자도,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지식인도 별로 없고,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도 적었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안에는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세상에서 무시 받고, 천대 받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너희들을 부르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셨습니까? 제가 심방을 하면서 꼭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성도님들이 “인생의 큰 어려움을 당하여 할 수 없이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을 듣게 되요. 잘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거나, 그렇게 건강했던 가족이 큰 병에 걸리고, 금쪽같은 내 자식이 방황하게 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 믿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신 있게 제 발로 찾아오신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밀려, 밀려 온 곳이 교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에 있을 때 너희를 부르신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도 제 발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야 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셨으면 이 자리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억지로 이 자리에 끌려오신 분들이 있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이 자리에 나오셨다고 생각하시고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적으로 무시당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세상적으로 잘 나갈 때 부르시지 않고, 큰 어려움을 당하여 어쩔 줄 모를 때 할 수 없이 두 손 들고 나오게 하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27~2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고, 문벌도 없는 사람들을 고린도 교회의 성도로 부르신 이유는 바로 그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바르지 않겠지만, 마치 하나님께서 청개구리처럼 행동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청개구리가 어떻게 행동합니까? 뭐든지 반대로 하잖아요. 여러분 상식적으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면 어떤 사람을 택해야 할까요? 더 지혜로운 사람이겠죠. 더 지혜로운 사람을 데려와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강한 사람을 어떻게 부끄럽게 할 수 있을까요? 더 강한 사람을 데려와야죠. 동네에서 자기가 제일 세다고 깡패짓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권투 세계 챔피온을 데려와서 박살을 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청개구리처럼 정반대로 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미련한 자를 데려오시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약한 자를 데려오십니다. 심지어 있는 것들을 폐하기 위해서 없는 것들, 즉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청개구리 같아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데 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사 기드온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사사인 기드온이 적국인 미디안에 맞서서 전투를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여호수아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사사가 되었을 때 미디안이 13만 5천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이에 맞서서 기드온은 군대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모인 군인의 숫자가 3만 2천명이었습니다. 13만 명에 비하면 1/4 규모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뜻밖의 말씀을 기드온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무 많다”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의 군인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쟁 역사상 가장 이상한 명령을 기드온이 내리게 됩니다. “전쟁이 두려운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세상에 이런 명령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라고 하시니까 기드온이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그 결과 3만 2천명의 군사 중에 2만 2천명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딱 만 명이 남았습니다. 1/4에서 1/13이 된 것입니다. 1/4도 쉽지 않은 전쟁일 텐데, 1/13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여전히 많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 명의 군사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줄일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남은 군사의 숫자가 몇 명입니까? 300명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드온과 300 용사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 300명을 데리고 13만 명의 미디안 대군과 맞서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전쟁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청개구리와 같은 행동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렇게 하신 이유를 기드온에게 설명하셨습니다. 사사기 7: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기드온에게 계속해서 군사들의 숫자를 줄이도록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전쟁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가 너희의 군사력이나 전략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를 계속해서 줄이셨던 것입니다. 


 만약 3만 명의 군사로, 혹은 만 명의 군사로 13만명의 대군을 이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일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12척의 배로 수 백 척의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기드온이 그런 군사들로 승리를 거뒀다면 기드온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상, 혹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하나로 추앙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300명을 데리고 13만 명을 이겼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무기가 좋고, 전략이 뛰어났다고 해도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났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세상에서 지혜 없고, 능력이 없으며, 문벌이 좋지 못한 그런 사람들을 부르셨습니까? 무엇보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지혜와 능력, 문벌을 어떤 곳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만약 교회 안에 지혜와 능력, 문벌이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부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을 고린도 사람들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하셨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교회를 채우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있으며,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지혜입니까? 돈입니까? 권력과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것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고, 얻기를 갈망하는 지혜나 돈, 권력 등은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세상이 하는 행동과 전혀 반대로 행동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무시하고 멸시하는 지혜 없는 사람들, 능력 없는 사람들, 문벌 좋지 않은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사 자기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이 세상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헛된 것임을 증명해 보이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절입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말 구원받기를 원하고, 정말 참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이 세상이 자랑하는 지혜나 돈이나 권력을 쫓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있고, 우리의 진정한 구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신자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우리들을 부르셨는지를 자꾸 잊어버립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어서 두 손, 두 발 들고 어쩔 수 없이 왔던 우리 모습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내가 잘해서 지금처럼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했던 착각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매우 초라하고 부족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들이 서로 잘 낫다고 4개 파로 쪼개져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낫다고 우기면서 싸우는 것은 자신의 처음 형편을 완전히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어떤 모습일 때 하나님이 부르셨는지를 완전히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라고 사도 바울이 오늘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잘나서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 목사되고, 장로되고 권사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게 자격이 있고, 그럴 가치가 있어서 이렇게 신자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면 갈 데 없고, 의지할 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 빠짐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 안에서 지혜와 의로움, 거룩, 구원을 은혜로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심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의로움, 거룩, 구원이 은혜로 우리에게 다 주어졌습니다.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의로움, 거룩과 구원으로 말미암아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 없는 우리들이 변화되어,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예수님 안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의 지혜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더럽고 추악한 죄를 지은 자라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의로운 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의 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고, 미련을 두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세상의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자유를 얻도록 구원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변화되지 않을 인생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미련한 자도, 약한 자도, 천하고 멸시 받는 자도, 심지어 세상에서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지혜롭고, 강하며, 존귀하며, 참된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그 어떤 인생도 다 변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인생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사랑하고 자랑하는 지혜와 돈, 권력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둘째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혜 없고, 능력 없고, 문벌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인생은 없습니다. 변화되지 않는 인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할 때, 그 어떤 인생도 구원받게 되고, 삶이 변화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화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은혜를 충만히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고, 우리의 변화된 삶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탈출구와 해결책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거나 의지하지 마세요.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을 읽고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오직 주님만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 안에서 약속된 풍성한 복이 넘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참된 복과 은혜와 능력을 누리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