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주일-오전) "복 있는 사람" / 시편 1:1~6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93장, 301장, 200장, 620장(3절만)
150927_(추석) 복있는 사람-고한율목사.pdf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추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추석 때 아내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편들이 집안 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그저 누워서 TV만 보는 것이랍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내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해요. 그러면 남편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는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돈입니다. 추석이라 돈이 들어갈 때가 많잖아요. 남편들에게는 돈이 가장 스트레스랍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는 어떤 것이 가장 스트레스일까요? “결혼 왜 안하냐? 취업 안 할 거냐? 누구 집 아들은 공부 1등 한다더라.” 이런 부모나 친척들의 잔소리라고 합니다. 이런 말 때문에 명절이 정말 싫다고 하는 청년들이 참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추석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고시원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추석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든 은곡교회 성도님들은 하늘에 뜬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복되고 풍성한 추석 명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추석과 설과 같은 명절이 되면 서로를 향해서 덕담을 합니다. 그 덕담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복 받으세요”일 것입니다. 추석은 조금 덜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는 설이 되면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도 서로 복 받으라는 덕담을 꼭 나눕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이 복 받는 삶을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복 받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자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오직 그 말씀으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 1장을 잘 보시면 단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일만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면서 하신 아주 중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한 만물에게 복을 주신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1:2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만드신 후에 그 모든 생물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짐승들뿐만 아닙니다. 1: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처음부터 복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베푸신 복 가운데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항상 복을 받기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창조될 때부터 복된 세상이었고, 사람 또한 복을 받은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인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받기 원하는 복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73:2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복 받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 말씀은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밝히신 귀한 말씀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하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되도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외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복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무엇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악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흔히 악인들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불량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악인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악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생각이나 그 삶 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보고 느끼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돈과 권력과 사람을 추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이러한 것들이 자신들의 삶에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과 권력과 사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힘으로 삼고, 자랑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면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들의 길은 망한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처럼 의지하였던 돈이나 권력, 사람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침 안개처럼 금방 사라질 것들입니다. 금방 사라질 것들에 자신의 인생을 걸면 그 인생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가 있었는데, 그 해에 엄청난 풍년이 들어서 추수한 곡물들을 다 보관하기 위해서 새로 창고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부자가 쌓아 놓은 곡물들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곡물을 쌓아두었으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얼마나 허망한 말씀입니까? 이제 그토록 바라던 큰돈을 손에 넣어서 즐기면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많은 돈은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의 삶은 이처럼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복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생각, 하나님이 없는 사상, 하나님이 없는 계획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잘 깨달음으로 우리 모두가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죄인들은 말 그대로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죄라는 단어의 뜻 안에는 화살을 쏘았을 때,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원래의 목표를 벗어나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원래 목적지를 벗어나서 엉뚱한 곳으로 간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 인간에게 주신 복된 삶의 길을 벗어나서 엉뚱한 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엉뚱한 길로 갔을까요? 그 길이 자신들이 볼 때는 넓고 편한 길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13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은 그 길의 끝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단지 들어가기 쉽고, 가는 길이 편한 넓은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길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길이 좁고, 험하더라도, 그 길이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길을 택하여 간다면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해 전에 유럽에서 비행기가 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때 다행이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가 깊은 산 속에 추락해서 구조대가 찾아오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간 기다린 생존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마을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온 힘을 다해 걸었는데, 불행히도 마을 찾지 못하였고, 그 생존자들은 모두 숲 속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건을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존자들이 똑바로 걸어갔다면 충분히 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자들이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고, 똑같은 길을 마치 원을 그리듯 계속 걸었다는 것입니다. 방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마을에 이르지 못하고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이 마치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열심히 걸어갑니다. 죽기 살기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벗어난 길로 가기 때문에 결국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평생을 한 길을 따라 살아왔는데, 그 길의 끝이 여러분이 원했던 그 목적지가 아니라면 이보다 더 허망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길이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의 끝, 목적지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은 그저 넓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그 끝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아무리 열심히 걸어가도 결국은 엉뚱한 곳에 도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 좋아보여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아무리 좁고 힘든 길이라도, 그 끝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만은 교만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이 교만은 단순히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만을 모든 죄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아주 근본적인 죄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 없이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게 되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없이 살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죄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바로 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 즉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의 자리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겸손의 자리에 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대신 자기를 낮추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풍성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오늘 본문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말씀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할 때, 그 정확한 뜻은 “그의 기쁨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기쁨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기쁨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의 모든 기쁨이 있으니까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은 그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중얼중얼 거린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으니까, 너무 기쁘니까 내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한 성도님 집에 심방을 갔는데, 그 성도님의 고백이 그래요. 집안일을 하면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 때 찬양이 계속해서 입에서 나온대요. 그래서 몸은 힘들지만, 찬양의 기쁨이 너무 커서 집안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거예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기쁘고 좋아서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기뻐할 때, 우리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 살고 싶은 것이 우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유혹 가운데 살아갑니까? 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서, 그 말씀이 우리 입에서 넘치게 될 때, 우리는 그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꾀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들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생명의 길에 서게 됩니다. 또한 우리들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달아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복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유일한 기쁨이 되도록 하세요. 그래서 내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나오도록 하세요.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참으로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어떤 복을 누리게 됩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여기서 시냇가라는 말은 하나의 개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개울이 같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무가 어디에 뿌리를 내려도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순종하는 성도는 그 삶의 형편이 모두 다르고, 처지가 다 다를지라도, 어디에 뿌리를 내려도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나무처럼 항상 하나님께 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모든 일에 형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수 없이 하는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사랑해서 그것을 기뻐하며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또한 우리 모두가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꾀, 즉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계획을 따르지 말고, 죄인들의 길, 그저 편하고 즐거운 길을 택하지 말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그런 자리에 앉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말씀대로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생명의 길에 서며, 겸손한 자리에서 주님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살아가기를 힘쓰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누리는 형통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 복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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