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6,주일-오전)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야고보서 4:13~17 / 고한율 목사
주일 1,2부 예배 |
본문 : 약 4장 13 ~ 17절 |
2017년 8월 6일 |
야고보서 강해(17)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찬송가 : 3 장, 28 장, 552 장, 620장 1절 // 교독문 65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한 노인에게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이 사라졌습니다. 노인은 하나 밖에 없는 말이 도망갔다고 생각하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망갔다고 생각한 말이 또 다른 말을 하나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말, 준마(駿馬)라고 하지요, 준마를 하나 끌고 왔습니다. 노인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젊은 아들이 데리고 온 말을 타다가 그만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다시 슬픔에 빠졌습니다. 저 말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내 아들이 다칠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전쟁이 나서 마을에 있는 모든 젊은 사람들을 군대로 뽑아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군대에 가지 못했습니다. 군대에 뽑혀간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노인은 자신의 아들이 다리가 부러진 것에 대해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옹지마와 같아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노인은 말이 도망갔을 때 슬퍼했지만, 그 일 때문에 또 다른 말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말을 얻어서 기뻐했지만, 그 일 때문에 노인의 소중한 아들의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게 되어 해를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슬픈 일이 기쁜 일이 되고, 기쁜 일이 슬픈 일이 되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는 것, 이것을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슬픈 일이 있어도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슬픈 일이 기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이 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이러한 사실을 똑같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본문 13~14절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어떤 사람들이 자신이 있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야고보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물며 일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겠느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생사 새옹지마이니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깨달아서 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는 매우 비슷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바로 1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갖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기도 하니 인생의 일이란 사람이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되기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타나는 현상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원인을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바로 이 부분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단순히 새옹지마로 보지 않고, 그 너머까지 보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인생사 새옹지마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이 우리 인생을 전혀 예측 못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15절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여진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10:29절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는 것은 참새의 가치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몇 백 원짜리 생명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미물인 참새도 무엇에 따라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마리의 참새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미물인 참새도 하나님의 뜻 아래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는 새옹지마, 즉 인생의 모든 일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경우가 바로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서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당연히 그 위에 있는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지요. 그런데 그래도 동생인데 죽이는 것은 너무하다 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요셉의 기가 막힌 삶이 시작됩니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서 왕의 경호대장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력을 인정받아서 가정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호대장 부인이 능력있고 잘생긴 요셉을 유혹하게 되고, 요셉이 거부하자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오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요셉은 인생사 새옹지마를 경험하게 됩니다. 옥에 갇혀 있을 때, 애굽 왕의 최측근 신하를 만나게 되고, 그 신하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요셉은 애굽 왕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고 그 결과 그는 애굽에서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자리인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오고 감옥에 갇힌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한 나라의 총리가 되었으니 과연 인생사 새옹지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불행과 행운 모두가 우연히, 어쩌다가 일어난 일이 아님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셉이 나중에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형들에게 한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5:5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를 판 일로 너무 근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나를 노예로 팔았지만, 사실 그 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 훗날 온 세상에 큰 가뭄이 들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백성인 야곱의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을 애굽 총리로 세워 가뭄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판 일은 사실 하나님의 큰 뜻 가운데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창세기 45:7~8절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요셉에게 인생사는 새옹지마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은 단순히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연하게 보이는 일들의 그 아래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요셉이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깨달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되돌아보니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인생에 대한 요셉의 눈이 완전히 새롭게 떠졌습니다. 이전에는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을 지독하게 원망하였습니다. 또한 자기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옥에 가둔 경호대장의 부인을 증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자, 그 원망과 증오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앞에 벌벌 떨고 있는 형들에게, 나를 애굽에 보낸 자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믿는 성도는 인생을 파괴하는 두 가지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 함정은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인생의 큰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이죠. 특별히 아주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한 사람들은 이런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믿으면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실패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인생 초반은 그야말로 꼬일 대로 꼬였습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친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실패의 바닥이 사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8:28절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도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어떤 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나쁜 일들만 있었으니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패를 거듭한다고 해도 절대 소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서도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을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유한한 인생들이기 때문에 크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과연 역사하고 계시는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을 차근차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결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우리 인생을 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우리 인생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붙들 때 우리들은 거듭된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믿을 때 우리들은 두 번째 함정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 함정은 바로 교만이라는 함정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마치 우리 인생을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일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안개와 같이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그런 유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부자가 있어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대단한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갖고 있던 창고를 무너뜨리고 새 창고를 크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노후는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고에 채워진 곡식을 보면서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인생을 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이 들렸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부자는 그저 돈이 많으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둬 가시면 그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두었다 해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다 해도, 아무리 많은 명예를 얻었다 해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남보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우쭐거린다면 그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스운 일이 없습니다. 시편 2:2~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자기가 가진 재물과 권세에 우쭐하여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비웃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강력한 권세를 가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둬 가시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수많은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당당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둬 가시면 아무 것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안개가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교만하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헛된 수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27: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됩니다. 우리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애쓰고 힘쓴다 할지라도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중에 타는 목마름도 있었고, 야생동물의 위협도 있었고, 떨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고 결국 정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일입니까?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까 이 산이 내가 오르고자 했던 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이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일까요? 우리가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 와보니 우리가 목표했던 곳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그래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니지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가는 데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차라리 안 간 것보다 못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빨리 가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방향을 보지 않고 인생길을 갑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것이 단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 가운데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로, 돈을 따라 가고, 권력을 따라가고, 인기를 따라갑니다.
그저 하나님은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것을 돕는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가 얻고 싶은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얻은 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합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똑같이 성도들도 자랑하는 것입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이 복 주셔서 이처럼 많이 얻었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런 자랑이 악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16절입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자랑은 이 세상 사람들의 자랑과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의 자랑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을 자랑하셔야 합니다. 왜 세상 사람들처럼 잘되어야만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 잘 믿어서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을 자랑하세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성도의 자랑입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사랑하고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회와 성도가 타락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겸손히 요청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뤄지는 것보다 더 복된 삶은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핵심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을 때 새옹지마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삶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질 것을 소망할 수 있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주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알고도, 그렇게 실천하지 않으면 죄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그저 머리로만 담지 말고 삶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내 마음의 욕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입니까? 무엇이 옳은지를 알았다면 그 옳은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인생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믿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며 매일매일 주어진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서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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