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3,주일-오전)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 / 야고보서 4:5~10 / 고한율 목사
주일 1,2부 예배 |
본문 : 약 4장 5 ~ 10절 |
2017년 7월 23일 |
야고보서 강해(15)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 |
찬송가 : 2 장, 25 장, 433 장, 620장 1절 // 교독문 63번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야고보는 세상과 벗이 된, 즉 세속화 된 성도를 향해서 “간음한 자들”이라는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이처럼 심한 돌직구를 날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속화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고 닮아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한 목적과 이 땅에 교회를 세운 목적을 허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경찰을 세웠는데, 경찰이 범죄자와 한통속이 되어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찰을 세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죄의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닮아서 죄의 어둠 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세상의 기업이나 단체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된다면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목적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교회 근처에는 있는 당곡중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작년부터 우리교회 선교위원회 안에 학원선교부를 만들었습니다. 교회 근처에 있는 학교들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학교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기를 위해 계속 기도해 왔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에 학교 복지담당 교사와 연결이 되었고, 학교를 도울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올해 학원선교로 책정된 예산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고맙게 여긴 교장선생님이 만나기를 요청해서 저와 전도사님, 선교부위원장 집사님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부모 가정이면서도 아주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3명의 학생들에게 은곡교회 이름으로 장학금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과 대화 나누던 중에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자기 건물이나 자기 행사에 돈을 많이 사용하면서도 이렇게 학교를 돕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은곡교회는 그렇게 크지도 않은 교회 같은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인데도, 요즘 교회들이 너무 자기만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일반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기업이나 단체처럼 자기 성장,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복되게 하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선전하기 위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세상과 닮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와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 세상을 닮아가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아주 심한 말로, 즉 간음한 자들이라는 말로 우리를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와 교회가 세속화 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이 모든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간의 첫 범죄는 에덴동산에서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절대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뱀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고 맙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선악과를 먹었을까요? 하나님이 먹으면 너희가 죽는다고 분명히 경고하셨는데도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먹었을까요? 그것은 뱀의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뱀이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 같이 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 없이 너희 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대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바로 이 교만이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싹이 텄고, 그 결과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만의 결과는 어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기대한대로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며 사는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이 풍성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복, 은혜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고, 죽음의 증상으로써 고난과 슬픔, 가난과 질병, 기근 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해외로 나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그런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탕자 이야기는 바로 아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독립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담 이야기이고, 또한 탕자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차지했던 우리 인생의 주인 자리를 다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다시 모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교만이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기 자신을 앉히는 것이라면, 겸손은 그 반대로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자리로 모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겸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겸손을 위선과 거의 비슷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어느 집에 심방을 가면 정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많이 차려놓습니다.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하셨어요. 그런데 꼭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먹을 것이 없어도 많이 드세요’라고 합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도 먹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나름대로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선에 가깝습니다. 누가 봐도 많이 차렸는데, 적게 차렸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지요. 그런데 보통 우리 한국 사람들은 겸손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도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한다고 할까봐 입니다. 능력이 있고, 그 일의 적음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계속 시키면 마지못해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겸손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무조건 못한다고 말하고, 자기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내가 하겠다 못하겠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주시면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이런 점에서 겸손은 교만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교만은 하겠다 못하겠다를 내가 결정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겸손은 하나님이 힘주시면 하겠다고 말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겸손입니다. 이런 이유로 참된 겸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겸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세상과 벗하지 않기 위해서, 세속화되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야말로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에게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셔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즉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가령 마태복음 5: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 해를 비춰주시는데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비춰주십니다. 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밭에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의 밭에도 똑같이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 세상 사람들 중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태양을 갑자기 없애신 다거나, 혹은 비를 아예 내리지 않도록 하신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따라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보면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날 것입니다. 몇 달만 비가 안 와도 꼼짝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것을 은혜로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뜬 해를 보며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은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이런 것들을 은혜라고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제가 심방을 하다보니까 이런 것들을 정말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중한 병에 걸려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성도님을 심방했는데, 해가 떠나 병실을 비추는 그 자체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더라구요. 창문 가로 보이는 나무와 꽃을 보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어서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어떤 성도님은 숨을 쉬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인지 모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위가 아파서 고생하는 다른 성도님은 먹고 마시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별게 다 감사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감사이고 은혜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모든 것을 그저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그 입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런 점에서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말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자는 은혜를 받아도 그것이 은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가 그 진주의 값어치를 알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하듯이, 그 마음이 교만한 사람도 은혜를 은혜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별거 아닌 일에도 감사가 나옵니까? 아니면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불평하고 불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내 삶에 은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은혜를 주셔도 우리가 교만하여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받을 수 있도록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하고 있는 성도라면 더욱 더 겸손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겸손한 마음을 가져서 우리 삶 속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가운데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몇 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겸손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인생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사실은 내가 주인 노릇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무서운 경고의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그저 입으로만 주님으로 불러서는 안 되고, 실제로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줍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마귀가 주는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거나 결심하면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힘으로 마귀를 상대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귀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마귀를 어떻게 이기셨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힘으로 마귀와 상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셔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이 때 마귀가 와서 3차례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유혹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반박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꼭 붙어 있을 때 마귀는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마귀는 우리를 떠나게 됩니다.
제 아이가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겁에 질려 울면서 집에 올 때가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아이가 놀린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나갑니다. 그러면 제 아이가 더 이상 겁을 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힘 센 아빠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 또한 도망가는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시편 73:2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 또한 우리를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세속화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지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시장 근처에 집이 있었는데, 맨날 맹자가 장사꾼 흉내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이 장사꾼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사를 했는데, 공동묘지 옆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맹자가 항상 우는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그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과 항상 어울리면 그 마음과 말, 행동도 어느 듯 닮아가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사실 세상 사람들을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 혼자 신앙생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세워서 함께 신앙생활 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와 성도와의 교제를 통해 세상에 물든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선배들이 말한 대로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보호 아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세속의 영향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닮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나누는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늘 8절 말씀에서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물리치시고 의인을 가까이 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죄 사함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며 겸손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9절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겸손은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이면서도 왜 욱할 때가 있는지 아십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상소리를 하며 화를 낼 때가 있는지 아십니까?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옥 저 끝에 쳐 박혀 있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없고는 결코 겸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고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인 존재인지를 분명히 알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겸손하여 무슨 일이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런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기 부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성도가 교회 안에 많기 때문에 교회가 항상 시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절망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달려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을 통해 더욱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며,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겸손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겸손한 성도에게 크신 은혜로 늘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오늘 예배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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