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주일-오후)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 엡 4장 1 ~ 6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30 장, 320 장
160110_2-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한율목사.pdf
오늘 제직헌신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하는 모든 제직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겠다는 헌신을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제직헌신예배를 드리면서 무엇보다 먼저 제직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제직은 누구입니까? 교회용어사전에 보니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교회의 항존직과 임시직 직원 전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직은 교회를 섬기는 위해서 직분을 받은 모든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업무를 담당하는 봉사자들입니다.
그런데 제직은 사회에 있는 일반단체에서 일하는 봉사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제직은 일은 하지만 돈은 안 받는다. 아니 오히려 돈을 내면서 일한다. 이런 생각 드시는 분 있으십니까? 제가 심방을 할 때 어느 성도님들이 그러더라구요. 성도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왜 그렇습니까’ 물었더니, 이 세상 어디에 돈 내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도 돈을 받지 않고, 심지어 자기 돈을 드려가면서 봉사하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사회에 있는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바쳐가며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 내면서 봉사하는 것은 세상 봉사자들과 제직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르심입니다.
제직은 반드시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불러 주셔야지만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봉사는 사실 본인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억지로 봉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서 하거나, 보람을 느껴서 하거나, 아니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없이 자원 봉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직의 경우는 다릅니다. 물론 제직으로 교회를 섬길 때 마음이 기쁘고, 보람을 느끼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마음이 너무나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제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다고 해서 제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직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제직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제직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이나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먼저는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에 제직으로 봉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제직이 이 세상의 모든 봉사자들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성도인 우리들에게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 안에서 갇힌 내가’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에베소서를 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에베소서를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어떤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이유는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면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로마 감옥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살아야 했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기 때문에 그 부르심에 따라 살았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원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르셨기 때문에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을 보면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꼭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씀하고, 또 고린도전서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고 평생 힘썼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뿐만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러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활동하던 당시가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남유다 백성의 타락이 너무나 심각해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하여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그가 하나님께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던 말씀이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전해야 했냐면, 바벨론이 곧 쳐들어 올텐데 무조건 항복해야 살 수 있다는 말을 전해야 했습니다. “적들과 맞서서 싸워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무조건 항복해라 그래야 산다”였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쉽게 전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매국노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고민이 깊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전하기는 해야 하는데, 이 말씀을 전하면 분명 백성들에게 조롱과 미움을 받고 생명의 위험 가운데 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이유를 예레미야서 20: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제직이 이와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에서 제직을 세우는 것이 형식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 교회 잘 다닌다 싶으면 제직으로 세웁니다. 어떨 때는 제직이 되면 믿음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제직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세워진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자기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물론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제직이 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말처럼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배 중에 우리에게 누구를 제직으로 세우라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제직 명단을 주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제직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기준에 합당하게 제직을 세우는 것입니다. 특별히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 베드로전서 5장에 보면 장로와 집사를 세우는 기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이 기준을 가지고 제직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제직으로 세워지는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이 기준에 부합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직분을 당장 받지 않고, 적합할 때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한국교회 현실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근차근히 이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직을 잘못 세우면 그만큼 교회는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중세교회는 정말로 교회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타락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중세교회에서는 직분을 사고파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령 헌금이 많이 나오는 교구의 목사자리는 비싼 가격에 실제로 거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제직이 세워지면 결국은 교회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힘써야 합니다. 첫째는 지금 제직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가 제직이 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고 원치 않고의 차원이 아니라, 부르심에 합당하게 제직으로서의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앞으로 우리 교회가 제직을 세워가는 데 있어서,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그래도 성경의 기준에 부합한 사람을 제직으로 세우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분명히 더욱 더 굳건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든 제직들은 제직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세워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우리가 제직으로 세워지게 되는데, 제직이 되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제직이 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 많고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그것을 다 살펴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대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직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그것은 바로 교회의 하나 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로 부름을 받은 제직이 무엇보다 힘써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하나 됨입니다. 즉 모든 성도들이 서로 나뉘어 져서 다투지 않고, 서로 하나 되어 섬기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제직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교회의 하나 됨을 우리가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절에 보시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까? 성령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는데, 그것을 힘써서 지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힘으로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역사가 오래된 교회는 성도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많이 얽혀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서로 화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멀어지고 소원해 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기력함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만드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화해시킬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또한 서로 용서하며, 하나가 되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그저 상처가 덮여지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던 관계로 새롭게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주저했던 마음이 변하여 다시 열정을 갖고 일하게 됩니다. 우리는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이 일을 행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지켜야 한다는 말은 정말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지킨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 지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2절에 보는 것처럼 모든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입니다. 이 세 가지를 무엇보다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내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여 문제를 풀려고 하면 그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교만은 반드시 문제를 크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겸손이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교회의 하나 됨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용납하고,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래 참음이 우리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성도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래 참을 때 교회는 더욱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직인 우리들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서 사랑 가운데 겸손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힘써야 할 이런 것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절에 보면 성령께서 우리에게서 맺는 열매를 말씀하는데, 거기에 사랑과 온유, 오래 참음이 들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사랑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을 때 그것 또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직인 우리들은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성령을 의지하여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으며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도록 기도하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모든 제직들이 힘써서 지킨다면 그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시며, 복음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런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면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불러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제직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데, 우리는 그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하나 됨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 안에서 겸손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의 하나 됨은 더욱 더 견고해 질 것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하나 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에 마음을 활짝 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올 한해 더욱 주님께 충성하는 우리 모든 제직들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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