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주일-오후) / 살전 강해(5) 유모와 아버지 / 살전 2:5 ~ 12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391장, 212장
150719_유모와 아버지 (살전2장 5-12절)-고한율목사.pdf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온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실라, 디모데에 의해 개척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이 안 되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바울과 실라, 디모데는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개척된 지 불과 3개월 정도 된 갓난아이와 같은 교회였는데, 그만 그들의 지도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범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에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즉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가득한 성숙한 신자들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그들이 전해 받은 복음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이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내적으로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성숙한 신앙을 가졌고, 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가득하였습니다. 분명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어려움과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회보다 더 모범적으로 성장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처럼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도들이 전하여 준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역사하여,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가 힘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선포되고, 또한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교회는 힘 있게 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우리 은곡교회 가운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려고 힘쓸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더 아름답게 세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났던 것은 무엇보다 말씀을 전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의 헌신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12절입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만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여러 우상을 섬기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복음은 단지 우리에게 천국티켓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변화입니다. “복음을 받고 이전에는 교회를 안 다녔는데, 지금은 교회를 다닙니다.” 이런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중심이 변해야 합니다.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명예를 의지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제는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중심의 변화가 없다면 참으로 복음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목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그저 지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단 하나, 그들이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말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수많은 말씀을 듣지만, 그저 귀에만 맴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들은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고, 우리의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지만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말씀을 받는 우리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그 말씀을 받는 마음만 좋다면 반드시 역사하여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삶으로 점점 더 변화되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분명한 목표, 즉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성도로 변화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바울이 어떻게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전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나오는 두 단어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유모와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유모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은 자신이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녀를 기름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대했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왜 유모라고 말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도의 어머니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양육하여 온전한 신자가 되도록 한 것 같지만,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구원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자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성도로 만드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6~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사도 바울은 아무리 자신이 전도하고 양육한 성도라 하여도, 그 성도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머니가 아닌 유모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 유모라는 표현을 한 것은 비록 자신이 낳은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와 똑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삶이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하였다고 말한 것이 그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7절 상반절에 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을 받은 자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9: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다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위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지금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게 그런 권위가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바울은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이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이 일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생업을 가지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낮에는 하루 종일 가죽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밤과 일을 쉬는 안식일에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그 일행은 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며 지혜를 가르쳤던 떠돌이 철학자들 때문입니다. 이 철학자들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아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당시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떠돌이 철학자들이나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니는 바울 일행이나 겉으로 보면 모두 똑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아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떠돌이 철학자들이 전하는 지혜와 복음이 같은 취급 받을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했던 것이 자비량 사역입니다. 즉 복음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떠돌이 철학자들과 자신을 구별시키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얼마나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데 철저하게 자신을 헌신하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비량 선교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오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바울은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복음이 바르게 전달되기 위해서 겪게 되는 희생과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마치 아이를 키우는 유모처럼 그렇게 대하였습니다. 자신이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그것을 희생하면서 어찌하든지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그렇게 양육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단지 유모로써 이렇게 부드럽게만 성도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모습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하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아버지로 비유합니다.
앞에서 바울은 자신을 유모, 즉 어머니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역할 또한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무엇보다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습니다. 여기서 권면과 위로, 경계는 당시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행해야 했던 의무였습니다. 바울은 마치 자기 자식을 바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의무를 다했던 아버지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그렇게 대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한편으로는 유모, 즉 어머니처럼,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할 수 있도록 그들을 양육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바울과 그 일행의 수고가 있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범적인 교회로 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 양육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쏟았던 바울과 그 일행의 헌신과 수고를 보게 됩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수고를 감당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그들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를 기뻐할 만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성도로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며, 모든 힘을 쏟아야 할 일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온전히 양육하는 일에 힘쓴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하며, 말씀으로 다른 성도들을 온전히 세우는 데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은곡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복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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