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주일-오전) / "교회기초 다지기(7) : 기도" / 요 14:13~14 / 고한율목사
150726_교회기초다지기(7)-기도_(요14장13-14절)_고한율목사.pdf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두 가지 수단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은 특별히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 기도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늘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3가지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도의 대상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기도를 누가 들으시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제가 은곡교회에 부임하고 얼마 안 돼서 아내와 함께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딸아이를 학교에 가서 데려와야 하는데 늦을 것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네비게이션을 켜고 “은곡교회”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안내를 따라 급히 운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이 아주 생소하였습니다. 전혀 못 봤던 골목으로 인도를 하더라고요. 아마도 지름길로 안내를 하나보다 생각하면서 계속 운전했습니다. 그리고 은곡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착한 곳이 우리 은곡교회가 아니라, 신림동에 있는 은곡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급하다보니까 은곡교회만 보고 눌렀는데, 신림동에도 은곡교회가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기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6: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아주 짧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주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이 표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 소련 우주비행사가 우주에 처음 나갔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거봐라 하늘에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 있어!” 이 사람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할 때, 그것을 눈에 보이는 공간으로서의 하늘, 우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하늘이나 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뜻입니다. 전도서 5: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며,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 나아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능치 못할 것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그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보이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 달라는 것은 다 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해서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 부모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아무 거나 사달라고 못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무엇이든 다 사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그런 제한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믿으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저 하늘에 계시다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 멀리에 계셔서 팔짱 끼시고 그저 우리를 쳐다보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대통령과 아주 친하다고 말하면서, 사기를 치는 사건입니다. 왜 사람들은 대통령과 친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렇게 쉽게 사기를 당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라면, 대통령을 통해 원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런 사기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시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6:31~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우리의 필요한 것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초청합니다. 빌립보서 4: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다 아시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항상 기도의 자리에 먼저 나와야 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고,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걱정만 하지 말고, 염려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모든 것을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항상 기도의 자리로 먼저 나올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이 내게 가장 좋은 것임을 믿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기도를 하게 됩니까? 우리에게 소원이 생겼을 때입니다. 우리 아이가 고3이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남편이 승진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일이 있을 때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일까 라는 것이죠.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1995년 6월 29일 늦은 오후에 그 목사님이 부목사님과 함께 서울 서초동으로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길이 막힐 것을 생각해서 미리 나왔는데, 시간이 남더랍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옆에 있는 한 백화점이 보여서, 거기서 커피 한 잔하고 가자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아무 말 없이 순종했을 부목사가 그 날은 “목사님 시내라서 갑자기 막히면 꼼짝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운전해서 가더랍니다. 이 담임목사님이 마음으로 얼마나 괘씸했는지, 우리 교회 부목사 잘못 왔다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심방을 바로 갔는데, 불과 30분 후에 엄청난 소식이 뉴스를 타고 나왔습니다. 바로 방금 지나온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만약 담임목사의 말을 따라 백화점에서 커피를 마셨더라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말을 듣지 않은 부목사가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죠. 그 날부터 그 담임목사님은 그 부목사님만 보면 꾸뻑 인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중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일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일이 반드시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담임목사의 바람대로 만약 커피를 마시러 백화점에 들어갔다면 당장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 곳이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곳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는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결코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그대로 응답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대로 구한 것을 다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을 하나님은 응답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말씀이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주의해서 보셔야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내 이름으로”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라는 말의 의미는 “마치 내가 구한 것처럼”, “마치 내가 기도한 것처럼” 너희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과 같은 내용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 응답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의 내용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22:42절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먼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자신의 소원이 비록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아닐지라도, 내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뤄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가장 복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삶이야말로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전 인생을 모두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복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이 달린 가장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예수님이 또한 우리들에게 자신처럼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응답 받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내게 가장 복될 뿐만 아니라, 모두 응답받게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무엇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드릴 수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29:11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된 삶을 살기를 누구보다도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의 뜻과 달리 보인다 할지라도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복되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이, 나의 가정이, 나의 일터가 모두 주님의 뜻 가운데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기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를 마치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제가 전에 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할 때였습니다.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알아주는 의과대학을 목표로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재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수를 하면서 주일 예배는 물론이고 청년부 모임에도 모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성경공부나 기도회에도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참 그래서 기특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시험을 보았는데 수학 1문제 차이로 그만 원하는 대학에서 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험에 떨어진 후에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자신이 지난 일 년 동안 정말 모든 힘을 다해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주일예배나 청년부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것이죠. 매일 열심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1문제 차이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못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하며 물었습니다.
이렇게 원망하는 그 친구에게 위로해 주면서,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과 거래하듯이 기도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이렇게 해 드렸으니 하나님도 제게 이렇게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드리고, 평생을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기도는 단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에 그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우상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기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상에게 드리는 기도는 서로 주고받는 거래가 다입니다. 내가 이만큼 해 주면, 우상도 내게 이만큼 해 주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기도,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신자의 기도는 말씀드린 대로 거래가 아닙니다. 그저 주고받는 것에 목표가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기도가 목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를 하는 우리 자신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더욱 깊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신명기 4: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우리 신자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지금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행동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그 때에 우리가 지금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즉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우리가 무언가가 꼭 필요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가 어디에 있게 됩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있을 때에든지, 직장에 있을 때에든지 어느 곳이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자리에서 기도하면 그 곳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신자가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더욱 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계속 보고, 계속 이야기를 나눌수록 친해지듯이,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더욱 기도에 힘씀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때에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로부터 주어지는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기도에 대해서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미 아십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가장 복된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무엇보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신자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임을 알고 더욱 기도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욱 기도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은곡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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