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9,주일-오전) "성찬을 합당히 받기 위하여" / 고전 11:27~35 / 고한율 목사
주일 1,2부 예배 |
본문 : 고전 11장 27 ~ 32절 |
2017년 7월 9일 |
성찬을 합당히 받기 위하여 |
찬송가 : 2 장, 21 장, 305 장, 620장 1절 // 교독문 : 92번
우리 교회는 일 년에 네 번 성찬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하기 2주 전에 먼저 광고를 드립니다. 성찬을 통해 받을 은혜를 기도하면서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찬을 기도로 준비하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매번 하는 성찬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성찬을 합당하게 받고, 성찬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약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복용하면 몸이 건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성찬을 받기만 하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성찬에 참여하되, 합당하게 참여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성찬에 참여만 하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합당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마치 약을 복용할 때 약사의 지시를 따라야 몸에 유익하듯이, 성찬도 합당한 방식으로 참여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성찬에 참여한다면 은혜는커녕 방금 읽은 말씀에 보는 것처럼 죄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참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성찬을 하다가 우리가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해 본 성도님들이 많지 않을 겁니다. “은혜는 못 받아도 어쨌든 성찬에 참여하는 자체가 좋은 것 아닌가”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분명히 성찬을 합당하게 받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면 우리는 무엇보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찬에 합당히 참여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성찬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성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두 가지 성례를 주셨는데, 성찬과 세례입니다. 그런데 성례가 무엇이냐? 성례를 다른 말로 ‘눈에 보이는 말씀’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예식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례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보여주는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성찬은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와 교회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다시 말하면 그것이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찬 때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즉 성찬을 통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성찬의 가장 중요한 뜻입니다. 그런데 성찬은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항상 공급하여 주심을 깨닫도록 합니다. 또한 성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우리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인 것을 성찬은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는 성찬을 통해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가 한 가족인 것을 알게 됩니다. 성찬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 성도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이를 통해 모든 성도가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 우리들은 마지막 날 참여하게 될 천국 잔치를 소망하게 됩니다. 비록 성찬식 때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아주 작지만 이것은 우리가 훗날 천국에서 누리게 될 하나님이 베푸실 잔치를 기대하게 합니다.
이처럼 성찬 안에는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말씀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받을 때 우리 죄를 대신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심, 예수님과의 연합, 예수님 안에서 모든 성도가 한 가족이 되는 것, 천국에서 누릴 잔치를 소망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성찬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요? 어떻게 참여하는 것이 합당하게 참여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우리가 성찬에 합당히 참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살피고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살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자신의 믿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성찬은 참여하기만 하면 저절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참여할 때에만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세례에 관한 오해인데, 세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부모가 돌아가시려고 할 때 어떻게 해서든지 세례를 받게 하려고 힘씁니다.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의식이 없는데도 세례를 부탁합니다. 물론 부모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다면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세례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 세례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마음에 분명한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세례 그 자체에는 어떤 효력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다고 해서 은혜가 저절로 충만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해야지만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찬을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가? 아니면 돈이나, 성공과 같은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다면 성찬은 결코 우리에게 은혜가 될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우리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돈이나 성공과 같은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한다면 성찬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고, 우리를 살게 하며, 우리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한다면 이 성찬의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찬을 받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런 모습이 있다면 우리들은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한 죄, 세상의 것들을 예수님보다 더 의지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성찬을 통해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를 살리며,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주일 예배에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작 전에 갑자기 지난주에 사소한 일로 다퉜던 성도님 생각이 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예배 마치고 기회가 되면 사과하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예배 전에 그 사람을 찾아가서 화해하고 그 다음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반대이지요? 우리는 화해보다 예배가 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화해가 예배보다 먼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화해하는 것이 예배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굳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따진다면 당연히 예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라고 하신 것은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결코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죄인이 하나님께 나와서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가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용서없이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한 자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용서를 멸시하는 자이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이미 받은 성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때 결국 하나님의 용서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4~15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은 용서를 베풀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용서도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용서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과 화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기 전 먼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찬이 가진 의미 중에 하나가 모든 성도가 한 가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떡과 한 잔을 마심으로서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그런데 만약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찬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찬을 준비하면서 내가 지금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화해하지 못하고 껄끄러운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성도로서 우리는 먼저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잘못된 자존심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하는 사람이 바보가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9절에 보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를 청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기 자녀에게 풍성한 성찬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 성도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뜨겁게 경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영적인 가족이 되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합당히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를 생각하면서, 그 용서를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성찬을 통해 더욱 생생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합당히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믿음을 살펴보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성찬에 임할 때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한 후 성찬에 임할 때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매번 하는 성찬 때마다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습관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성찬을 통해 주실 은혜를 사모하여 뜨겁게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신의 믿음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살피고, 뜨겁게 기도함으로 성찬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풍성한 은혜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경험하고, 영적인 양식으로 배부르게 되며, 예수님과의 연합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또한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영적인 한 가족이 되어 더욱 사랑하게 되고, 마지막 날 참여하게 될 천국 잔치를 우리 모두가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에 합당히 참여하는 자에게 약속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받고, 그 은혜를 힘입어 이 세상에서 늘 승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을 통해 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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