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주일-오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 / 시 50:23 / 고한율목사
주일 1,2부 예배 |
본문 : 시편 50편 23절 |
2017년 7월 2일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 |
찬송가 : 2 장, 20 장, 331 장, 620장 1절 / 교독문 : 105 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맥추절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초막절을 3대 절기로 지켰는데, 이 절기가 되면 모든 유대인 남성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다 모여야 했습니다. 맥추절은 특히 밀과 같은 곡식을 추수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절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추감사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맥추절은 다른 말로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이 끝나고 50일 후에 지켰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은 오순, 즉 10일이 5번 지났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맥추절은 곡식을 추수한 후에,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렸던 절기였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로서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또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린다는 의미에서 맥추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우리 심령에 충만히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은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타깝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의 목적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누구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입니까? 하나님이지요. 분명 그렇지요. 하지만 예배를 다 드린 후에 우리들은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생각을 합니까? 아니면 내가 이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먼저 생각합니까?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도 예배를 마치고 나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예배를 실수 없이 잘 인도했는지, 설교를 은혜롭게 했는지, 이런 생각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나의 만족과 유익을 먼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배 그 자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성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아담의 두 아들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이야기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농부여서 곡식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목축을 하여서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많은 학자들은 가인이 합당하지 않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아벨이 드린 것처럼 짐승을 드려야 하는데, 곡식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에 보면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곡식이냐 동물이냐의 차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쉽지 않지만 성경을 유심히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4:4~5절입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제물만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하지 않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가인이 짐승을 드리지 않아서 예배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가인 자신이 예배에 실패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이 어떤 제물을 드렸는가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어떤 제물을 드렸습니까?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냥 양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 새끼나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첫 새끼를 가지고 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벨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제물을 미리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아벨이 진정한 예배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진정한 제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어떻습니까? 가인 자신이 진정한 예배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물을 드렸습니까? 땅의 소산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도 잘 보셔야 합니다. 땅의 소산을 제물로 삼았다고 할 때, 땅의 소산은 그야말로 곡식 중 아무 거나 들고 왔다는 뜻입니다. 아벨처럼 구별된 제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는 드려야 하겠고, 자기에게 있는 것 중에 아무 거나 들고 와서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가인이 진정한 예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물 또한 진정한 제물이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예배자 자신입니다. 예배자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예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결코 합당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감사 없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감사가 이처럼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감사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니까 감사는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 감사입니다. 누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감사하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이런 보통의 뜻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손양원 목사님의 열 가지 감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같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요?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어떤 원망이나 미움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열 가지 감사를 말하였습니다. 감사는 고맙게 여긴다는 뜻인데, 고맙게 여길 일이 전혀 없고, 오히려 억울하고 분통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감사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감사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감사는 반응이 아닙니다. 즉 좋은 일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감사는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래서 결국은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심을 믿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감사는 단순히 고마운 마음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감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려운 말씀입니다. 식당 같은 곳에서 자주 보는 성경구절이라 편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감히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냥 감사하라 라고 하면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감사하라고 말씀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는 말 그대로 모든 일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단지 좋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과 고통, 비극적인 일 또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습니다. 평소에 건강에 자신을 갖고 살았는데, 우연히 받은 검사에서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자녀가 사고를 쳤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당하는 끔찍한 일들입니다.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낙심하고 절망하며, 특히 성도인 우리들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어려움과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빨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이것이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 행복한 일만이 아니라, 고통과 비극, 슬픈 일조차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좋기만 한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아주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렵다고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뜻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분명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해 보세요. 절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사님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또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감사를 고맙게 여기는 반응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절대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감사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모든 형편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결과 모든 일들을 통해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감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의 감사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이나 능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예를 성경에서 하나 찾아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하지 말고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합니까? 감사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세상적인 의미에서 감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응답이 되었을 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이 와야 감사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도할 때부터 이미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감사가 반응이 아닌 오히려 변화시키는 힘과 능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하면서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감사가 어떤 형편과 상황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결과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힘 있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감사할 때입니다. 감사로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그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입니까? 내가 기도해도 응답이 될까? 하는 의심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도 전혀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 같으면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데, 언제나 즉각 응답해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즉시 응답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당장 응답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가장 알맞을 때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때를 모르니까 응답이 늦는 것으로 생각하여 답답해하거나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는다고 해서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 계속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것을 오래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를 계속하는 것보다 더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우리에게 그냥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냥 기도하면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감사가 있으면 그 감사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란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 결과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룰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당장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감사는 단순한 반응이 아닙니다. 감사는 변화시키는 힘이고 능력이 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며 실망하고 원망하는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단순히 주어진 은혜에 대한 고마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감사하는 성도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이 성숙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 100독 한 것입니까? 새벽기도회 10년 개근입니까? 봉사를 많이 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도 너무나 훌륭하고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사람의 신앙이 성숙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바로 감사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항상 감사하면서 산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신앙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감사가 신앙성숙의 가장 분명한 증거라는 사실을 종교개혁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후찬양예배 때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함께 살펴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신앙고백서는 우리의 신앙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한 중요한 문서입니다. 비록 성경처럼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지만, 성경을 근거로 작성되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가장 잘 요약한 문서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47년 영국에서 작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유럽의 각 나라마다 이러한 신앙고백서와 교리 문답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그들이 만든 신앙고백서나 교리 문답서를 통해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교리문답서가 있습니다. 바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입니다. 이 요리문답은 지금도 우리 교회가 따르는 많은 개혁교회들에서 주일 오후에 설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리문답이 총 3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3부분으로 성경 전체를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 부분의 제목이 ‘인간의 비참함에 관하여’입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부분의 제목이 무엇이냐? 바로 ‘감사에 관하여’입니다.
이것은 종교객혁자들이 ‘감사’를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겼는지를 알게 합니다. 감사란 구원 받은 사람의 삶 그 자체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감사가 없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만큼 감사가 중요합니다. 감사는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이며, 또한 신앙성숙의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감사가 이처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드리는 성도를 가장 기뻐합니다. 감사가 가득할 때 우리들은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인내하며 소망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로 가득할 때 우리의 기도는 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심령에 감사가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도 우리 삶 속에 베푼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기억함으로 감사를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항상 감사가 나오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항상 감사한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을 늘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감사가 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복 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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