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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01/01,주일-오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 눅 22장 14 ~ 20절 / 고한율 목사

(01/01,주일-오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 눅 22장 14 ~ 20절 / 고한율 목사


170101_(성찬)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고한율목사.pdf


찬송가 : 1 장, 550 장, 182 장, 171 장 1절// 교독문 : 94번



 오늘은 새해 첫날이자, 또한 새해 첫 주일입니다. 저는 새해 첫날이 첫 주일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는 유독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하는데, 말 그대로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 새해는 뭔가 다른가? 뭔가 달랐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치는 계속해서 혼란 속에 빠져 있어서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는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로 최고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청년들은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가 되었습니다. 삼포세대가 뭔지 아시죠? 취직이 잘 안 되어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옛말이고 이제는 오포세대라고 합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다가 이제는 인간관계, 주택 구입도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희망차야 할 청년들이 가장 깊은 절망 가운데 빠진 오늘입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무서울 정도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도를 넘어선지 오래고, 이혼은 이제 평범한 일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교회 또한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그런 비참한 신세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입니다(사 1:6). 이런 상황 속에서 맞는 2017년 새해는 말만 새해일 뿐이지, 어떤 것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려운 절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처럼 절망의 밤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밤이 깊었다는 뜻은 이제 곧 새벽이 밝아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인 우리들은 이 모든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28절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일에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과 절망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 절망을 통해서도 능히 선을 이루어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절망 가득한 오늘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되고,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새해 첫날, 첫 주일에 성찬식을 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찬을 통해 절망 가득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던 이야기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들을 통해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성찬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19~20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곧 당할 십자가 죽음의 의미와 그 죽음을 통해 주어질 유익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찬은 무엇보다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큰 소망과 힘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4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찬은 고난 뒤에 영광이 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성찬은 무엇보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시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보통의 인간처럼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죽으시는 절망을 당하셔야 했지만, 그 절망은 결코 영원한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절망은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6:5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연합되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세상 마지막 날에만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계속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 가운데 계속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들을 절망 가운데 계속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죽음의 절망 아래 있던 예수님을 사흘 만에 부활시켰듯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그 가운데서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찬을 받을 때 단지 예수님의 죽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 다음에 일어난 부활사건 또한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깨뜨린 부활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릴 위한 죽음이듯이, 예수님의 부활 또한 우릴 위한 부활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당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부활로 열매 맺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고난도 부활로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능력이 충만히 부어져서, 우리가 당한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성찬은 우리의 참된 양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찬을 할 때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가 우리의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면서 자신에게 오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삶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다고 말을 합니까? 정말 어려운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닙니까? 남들보다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풍족하고, 좀 더 여유있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염려하면서 힘들게 사는 것은 아닙니까? 혹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불안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는지, 그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 산다고 단순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유지할 양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6:26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저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누가 주목합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살아갑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물며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이 새보다 훨씬 귀한 너희를 내버려 두시겠느냐? 이런 점에서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너무 집착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하늘 아버지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무엇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까? 바로 오늘 하는 성찬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고, 입히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생명의 떡과 포도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돈이나 이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성찬을 대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 복을 모두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찬은 천국 잔치를 소망하게 합니다. 

      성찬은 우리 각자가 따로 따로 하나님 앞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먹는 예식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은 우리가 앞으로 누리게 될 천국잔치를 미리 경험하도록 합니다. 성경은 천국을 잔치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잔치처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겁고, 행복한 곳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찬을 먹고 마실 때마다 우리가 앞으로 누리게 될 천국잔치를 기대해야 합니다. 얼마나 풍성하고 복되고 즐겁고 행복할지를 상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국잔치에 대한 소망은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견디게 하고 이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불같은 핍박과 시험의 시기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무수한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끔찍한 고문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무서운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담담히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의 소망으로 충만하여 불과 같은 현실을 견디고 이겨 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갈수록 흐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이 이 땅의 삶과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어서 사업이 잘되고, 예수 믿어서 건강하고, 예수 믿어서 자녀가 잘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이유가 단지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핵심이 빠진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언제나 천국이어야 합니다. 천국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이기고, 절망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찬을 하면서 천국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따로 있습니다. 천국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이런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분명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찬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말미암아 너희와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구약 예레미야서 31:31절을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망했을 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서 새롭게 자기 백성을 세우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31:33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어디에 기록하겠다고 말씀합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기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세우신 옛 언약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맺을 때는 어디에다가 율법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돌판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는 두 돌판을 들고 백성에게 내려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돌판에 새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멸망당했습니다. 옛 언약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옛 언약과 달리 돌판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마음에 법을 새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율법을 새겨서 순종하도록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마음에 율법을 새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던 에스겔 선지자가 이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에스겔서 36:27절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께서 마음에 율법을 기록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 언약의 핵심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실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후에 성령님이 교회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성찬과 성령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할 때마다 우리가 새 언약의 백성이며,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절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부활의 능력을 얻는 것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하늘 아버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천국을 소망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확신, 소망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거기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충만하게 되어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며, 염려와 근심을 이기고 기쁨 가운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하며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오늘날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되고, 하늘 아버지의 돌보심을 경험하게 되며, 천국을 바라보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절망을 이기는 소망, 염려를 이기는 믿음을 충만히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와 세계 교회 전체에 뜻 깊은 해입니다. 우리 교회는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고, 세계 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뜻 깊은 해에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절망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각자의 삶이 새로워지고, 우리 가정이 새로워지고,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가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모든 어려움과 절망을 이기게 하시고, 주님의 복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