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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0/23,주일-오후) "신앙고백서(11) 하나님의 섭리(3)" / 고린도후서 12:7~10 / 고한율목사

(10/23,주일-오후) "신앙고백서(11) 하나님의 섭리(3)" / 고린도후서 12:7~10 / 고한율목사 

161023_하나님의 섭리(3)_고한율목사.pdf


찬송가 : 438 장, 300 장


 하나님의 섭리라는 주제를 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섭리란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을 하나님이 돌보시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돌보시고 다스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라 모든 일들이 되도록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악과 죄조차도 그 뜻대로 섭리하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악이나 죄를 만들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과 죄가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 닥쳐오는 고난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는 일이 아님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는 고난과 어려움이 와도 쉽게 절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주는지 모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 사람들은 그저 운이 없어서, 재수가 없어서 이렇게 힘들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우리들은 우리가 당한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는 결단코 삶의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잠히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가 시편 62:1~2절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는 성도는 항상 소망 가운데 살게 되며, 그러므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오늘은 특별히 성도와 불신자,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앙고백서 5장 5항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특별히 성도에게 시험과 고난을 주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5장 5항의 앞부분(15쪽)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친자녀들을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와 또는 그들의 마음의 부패성에 내버려두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친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부패성에 내버려 두시기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 시험을 주셔서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저 내버려 두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총 6가지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1) 전날에 범했던 그들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를 지었을 경우, 그 죄의 징계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은 잘못을 해도 무조건 봐 준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남의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하면 크게 꾸짖지 않습니다. 그냥 하지 말라고 타이를 뿐입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잘못을 하면 보통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혼을 냅니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불만이지요. 왜 남의 자식에게는 잘 해주면서 정작 자기 자식에게는 엄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엄한 것입니다. 남의 자식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엄하게 하여서 똑바로 키우려고 하는 것이죠. 남의 자식에게 관대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는 절대 무관심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징계를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똑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그것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미워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자녀로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이 일이 혹 우리의 죄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를 우리가 살피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 징계를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매로서 고난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2) 그들로 하여금 그들 속에 잠재해 있는 부패성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발견케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죄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그 사람이 고난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지고, 고통스러울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치 깨끗한 연못에 막대를 집어넣고 휘저으면 금방 흙탕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평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이 오면 우리가 진짜 어떤 사람인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난이 찾아올 때 그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거짓 믿음은 고난 중에 파산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고난은 평소에 알지 못했던 우리 속의 불신앙과 죄성을 들춰내어 우리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셋째는 “(3)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령의 거짓됨을 알게 하여 겸손케 하려는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방금 살펴본 대로 고난은 평소에 숨겨져 있었던 우리의 불신앙과 죄성을 드러내는데, 그 결과 우리의 거짓됨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도록 만드십니다. 실제로 제가 심방을 하면서 큰 고난을 당하신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겸손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는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더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건강이나 재물, 사람을 잃어 버려서 의지할 것이 없으면, 그 때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C.S. 루이스는 그의 책에서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복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고난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만드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겠지요.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복, 즉 복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복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4)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계속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즉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더욱 의지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멈추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도 고난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이처럼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나 이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에서 이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바울의 몸에 가시, 즉 사탄의 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세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체에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육체의 가시라는 것은 몸의 질병을 말하는 것인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사탄의 사자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질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갈라디아서 4장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너희 눈을 빼서라도 나에게 주려고 했다는 말을 근거로 바울에게 아주 심각한 눈 질환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간질입니다. 바울이 간질을 앓았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추측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하고 내려 와서는 간질 때문에 땅 바닥에 뒤집어져서 막 떠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바울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나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세 번 이 질병이 낫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세 번 했다는 것은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뜻 밖에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나에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안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안 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기뻐하면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말씀의 뜻은 ‘네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강하게 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더욱 의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더욱 의지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경우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내가 가진 것을 의지하느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합니까? 고난은 이런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의지하게 만듦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5) 그들로 하여금 경성하여 미래의 범죄를 방지케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징계를 받은 자녀는 죄를 짓는 일을 두려워하게 되는 법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죄짓는 일을 두려워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6) 기타 여러 가지 옳고 거룩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이유 외에도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고난이 왔을 때 그것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또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의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고난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려움이 아닌 복이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잘 새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불신자에게 주시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도 신앙고백서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6항을 보시기 바랍니다. “악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전날 죄악을 벌하시는 의미에서 그들을 다음과 같이 어두워지게 하시고 또 완악하게 하신다.” 성도와 불신자에게 하나님은 똑같이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그 이유와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무엇보다 불신자에게 주시는 고난은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받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저 내버려 두신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이 죄를 짓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심으로 말미암아 그 당하는 고난이 점점 더 깊어지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결국 완전한 멸망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불신자들을 멸망시킨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죄를 짓는대로 그저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가장 큰 벌이 있다면 그것은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가끔은 성도인 우리들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우면 ‘하나님 저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보다 위험한 말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그저 내버려 둔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멸망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을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끈질기게 우리와 씨름을 하십니다. 어떨 때는 고난을 주시고, 어떨 때는 혼도 내시고, 또 어떨 때는 어루만져 주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반드시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신자의 경우는 그들을 내버려 둠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보겠습니다. 7항입니다(16쪽). “하나님의 섭리가 일반적으로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거니와 특수한 방법으로는 그가 교회를 돌보시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교회를 향해서 특별한 섭리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왕이었던 아합 왕 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찾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잔인한 핍박 가운데 참된 신자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나만 남았습니다.”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나 밖에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없다는 것이죠. 이런 엘리야의 하소연을 우리도 따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로 믿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 또한 엘리야처럼 “하나님 저만 남았습니다.”라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나만 남았다고 말하자,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의인 7000명을 내가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변에 참된 신앙인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곳곳에 참된 신앙인들을 두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의 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언제나 주님의 교회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 주실 줄로 믿고, 오늘의 현실에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가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충성한다면 하나님은 그가 남겨둔 참된 성도들을 통해서 어떤 시대이든 복된 교회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믿고, 우리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에게 주시는 고난에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교회를 향한 특별한 섭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마음에 잘 새겨서 항상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앞으로 행하실 일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과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