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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101/16,주일-오후) "WCF (10) 하나님의 섭리(2)" / 창 45장 4 ~ 8절 / 고한율목사

(101/16,주일-오후) "WCF (10) 하나님의 섭리(2)" / 창 45장 4 ~ 8절 / 고한율목사

161016-하나님의 섭리-고한율목사.pdf


찬송가 : 436 장, 432 장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보존하시고, 보살피며,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후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저 팔짱 끼시고 세상을 쳐다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은 후에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아이를 보호하고, 지도하고, 양육하는 것처럼 하나님 또한 이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 뜻대로 다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연이나 운 등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서 5장 2항을 같이 보겠습니다(13쪽). “제 1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대로 변동 없이 모든 일들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것들의 되어 가는 방편은 제 2원인(자연법칙과 인류의 행동원리와 기타)의 성격대로 필연적인 것, 임의적인 것, 또 혹은 우연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두 가지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편하게 제 1원인과 제 2원인으로 부릅니다. 좀 복잡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 1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것을 막거나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모두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제 2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 사용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이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땅을 판 값의 일부만을 가져왔을 뿐인데, 마치 전부를 가져온 것처럼 속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자신들이 한 일을 더 크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드릴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사람에게 한 거짓말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통하지 않고 직접 그 뜻을 실행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타락한 왕이었던 아합의 경우는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방식으로 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하나님은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합 왕이 죽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어떻게 죽게 되느냐,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던 중에 아람 군대의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2:3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아합 왕은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합의 죽음은 우연히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합이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작정이 아람군대의 한 병사를 통해서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아람의 한 병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제 2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연한 일처럼 보이는 일들조차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일어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신앙고백서 5장 3항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14쪽).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보통 섭리에서 간접적인 방편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가 자유롭게 방편 없이 역사하시거나 방편을 초월하여, 그의 기쁘신 뜻대로 방편에 역행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할 때 많은 경우 간접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뭐하세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니까 먼저 기도해야죠. 


 그런데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기도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국을 가든지, 병원을 가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약국에 가고, 병원에 가는 것을 마치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오해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치료의 광선을 비춰주셔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하나님이 직접 치료하시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도록 하시고, 또한 그 치료방법을 개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약국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시는데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먹으라고 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디모데가 위장에 문제가 있었고, 자질구레한 병에 자주 걸렸기 때문에, 그 치료를 위해 말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23절입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병에서 치유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의 경우에도 바울이 기도하면 낫게 되지 않을까요? 포도주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해 줄게 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약으로 많이 사용했던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말하였습니다. 약을 사용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아무 것도 통하지 않고 직접 역사하실 때도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홍해를 가르시기도 했고, 가나안 땅의 첫 성인 여리고 성을 저절로 무너뜨리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로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적 또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기도 하고, 어떤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편 신앙고백서 5장 4항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하여 조금 심각한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바로 죄와 악에 관한 문제입니다. 4항 앞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14쪽).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극히 지혜로우심과 선하심이 그의 섭리에 나타난다. 아담의 타락 또는 천사들과 인류의 모든 죄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관할 하에 들어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선하게 섭리하시는데 어떻게 악이 존재하고, 죄가 있을 수 있는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앙고백서는 단순히 죄와 악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이러한 죄와 악 또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즉 ‘아담의 타락 또는 천사들과 인류의 모든 죄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관할 하에 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악을 만드시고, 인간으로 죄를 짓도록 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악을 만드시거나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4항 3번을 보세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죄는 피조물들(사람들이나 천사들)에게서 난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므로 그 자신이 죄의 조성자도 아니거니와 죄를 승인하시지도 아니하신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죄의 조성자가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악이나 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과 죄가 하나님의 섭리 밖에서 제멋대로 일어나는 일 또한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악과 죄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즉 악과 죄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이 얼마나 미워했든지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죽이지는 않고 대신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인신매매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노예가 되어 애굽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노예로 일하던 중 주인 마님의 유혹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거절하다가 그만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사는 것도 참으로 비참한데, 이제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불행이 형들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옥에 갇힌 요셉이 우연히 같은 감옥에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관원장이 꿈을 꾸게 되었는데,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나중에 요셉은 애굽 왕이 꾼 꿈을 해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결국 애굽 왕은 요셉을 높이 생각해서 그를 애굽의 총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7년 동안 계속된 풍년을 맞아 엄청난 식량을 창고에 저장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 왕의 꿈을 통해 알려주신 대로 7년 풍년 뒤에 7년의 끔찍한 흉년이 올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7년의 흉년이 찾아왔고, 이 때 애굽 주변 모든 나라들이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준비로 말미암아 애굽에는 식량이 넘쳤습니다. 


 이 때 가나안 땅에 살던 요셉의 가족들도 끔찍한 흉년으로 말미암아 식량이 부족하여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인 요셉을 형들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형들에게 밝혔을 때, 요셉의 형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미워서 노예로 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이제는 다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요셉은 형들에게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세요.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으로 온 것이 형들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 7~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이 노예로 애굽에 온 것은 사실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7년 동안 계속될 끔찍한 흉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을 애굽으로 미리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의 행동이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분명 요셉의 형들은 악한 일을 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들이 지은 죄를 통해서도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즉 악과 죄를 그저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와 확신을 주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게 되는 악한 일들과 죄 된 일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릴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28절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는 악한 일, 죄된 일조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을 통해서도 결국은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는 우리들은 어떤 일을 당해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완전히 넘어지게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우리에게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한 이야기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지선이라는 분을 아시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 분은 25살 때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아주 예쁜 아가씨였고,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올림픽 대로를 지나가다가 음주운전을 한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때 오빠는 밖으로 튕겨 나가고, 이지선 씨는 차 안에 있었는데, 그만 차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전신에 화상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의사들은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 번의 위기를 넘긴 끝에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온 몸이 화상을 입었는데, 특히 얼굴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흉측해 졌다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몇 번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분이 하나님을 참 잘 믿는 성도였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분이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건강을 되찾은 후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감동을 받고, 좌절했던 사람들이 삶의 용기를 얻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구나.’ 


 만약 사고가 안 났다면 그저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았을 텐데 이 사건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 분은 자신이 당한 사건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고를 일으킨 음주운전자도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사회복지를 공부하여 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일들을 통해서도 능히 선한 일을 만들어 내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음으로, 어떤 일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해

1. 하나님의 뜻은 못 찾도록 숨겨두지 않았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 우리의 실패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