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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6/14,오후) 살전 강해(2) 열매 맺는 성도 / 살전 1:2~5 / 고한율목사


<설교원문>

(6/14,오후) 살전 강해(2) 열매 맺는 성도 / 살전 1:2~5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270장, 288장

150614_오후예배_열매 맺는 성도 (살전1장2-5절).pdf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사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어떻게 데살로니가 도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와 칭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정말 모범적으로 신앙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칭찬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바울의 감사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를 말합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무엇보다 먼저 갖게 되는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3절에 나옵니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과 그 일행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습니까?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때문입니다. 

 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의 특징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 둘째는 사랑의 수고, 셋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로 이 세 가지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믿음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는 무엇보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믿음의 역사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만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지식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할 믿음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알고 믿는다고만 해서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무엇이 따라야 합니까?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유익도 없으며 그런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냐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은 단순히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 즉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보며 감사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단순히 입으로만 믿는다고 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믿음대로 행하는 삶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 도시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크게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된 야손과 여러 형제들이 재판에 끌려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경우는 참으로 드뭅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오는 핍박과 고난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핍박과 고난을 견디어 냄으로 자신들의 믿음이 진짜인 것을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은 온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참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바울이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귀하고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참된 믿음이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행함으로 삶 가운데 열매 맺는, 참으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수고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애쓰고, 희생하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단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동시에 나타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을 단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역사가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아무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는데,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 사랑에 대해서 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오래될수록 듣게 되는 평가가 있습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사랑은 없어”라는 평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말씀과 교리는 참 잘 압니다. 예배가 참으로 엄숙하고, 모든 일에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교회일수록 새 신자들이 교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 신문을 보는데, ‘교회가 새 신자를 쫓아내는 10가지 말’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10가지 말 중에 하나가 새 신자가 처음 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기존 신자가 와서 “거기는 원래 내 자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새 신자는 100%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별거 아닌 문제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전에 목회를 하실 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교회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당에 자기 지정 좌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 신자가 와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양보를 하지 않았답니다. 이것을 심각히 여겨서 어느 날 예배 시작 직전에 목사님이 성도님들에게 모두 일어서라고 했답니다. 성도님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났지요. 그러자 목사님은 모든 성도들은 자기가 앉은 줄이 아닌, 옆의 줄로 가서 앉아 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도 안 움직이니까 예배 직전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답니다. 한 10초가 지났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더래요. 그래서 목사님은 자기가 말을 잘못해서 이해를 못했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말했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꿈쩍하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제자리에 모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그 교회에 10년 가까이 목회하셨는데, 자기가 하지 못한 유일한 일이 바로 예배 자리를 바꾸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어떠했습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고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내게 익숙한 것, 내게 유익한 것, 내게 좋은 것을 양보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내 것을 희생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수고를 기꺼이 할 줄 안다면 교회가 얼마나 행복한 곳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누구 하나만 그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우리 모두가 사랑의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의 것을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게 될 때, 거기로부터 무수한 새 생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수고를 행할 때 교회 안에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풍성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소망이었습니다. 이 재림의 소망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다 하더라도 소망의 인내가 없다면 그것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과 기도로 충만할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고, 누구라도 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솟아납니다. 하지만 이 믿음과 사랑이 언제나 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지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나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고, 미워하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만 전혀 바뀌지 않는 것 같을 때 지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지칠 때 다시 힘을 내어 믿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재림의 대한 소망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무엇보다 재림에 대한 뜨거운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사랑에 대해 칭찬해 주실 것을 그들은 소망하였습니다. 이 재림의 소망으로 그들은 핍박 받는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재림의 소망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사는 것이 편할수록 재림에 대한 소망은 적어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사는 것도 큰 불편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신앙에 큰 위기를 부릅니다. 재림 소망이 사라진 곳에 방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9~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예수님의 재림이 결코 더디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은 도둑 같이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늘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는 삶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 재림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계속해서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분명히 오십니다. 그 날까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소망의 인내로 잘 감당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칭찬과 면류관이 준비될 것입니다. 이 칭찬과 면류관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4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여러분, 이 말씀은 얼마나 복된 말인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목사로서 자기 성도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야 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들이고, 너희야 말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내가 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모든 성도들을 볼 때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복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목사인 저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제가 목회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요, 택하심을 받은 사람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이름이 높고, 많은 성공을 거두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중 한 명 예외 없이 모두가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괴로운 직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아직 연수가 많은 목사는 아니지만, 10여 년 넘게 사역하는 동안 수많은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에 신앙의 길을 벗어나 세상으로 돌아간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반대로 그 믿음이 희미했던 사람들이 바른 믿음을 갖게 되고, 충성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목사에게는 가장 귀한 일이고, 복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은곡교회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로서, 그 증거가 분명하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사랑받는 형제들이요 택함을 받은 자가 되었다고 확신했던 이유가 5절에 나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확신은 그가 전한 복음이 단지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의 일행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읽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큰 능력과 확신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큰 확신을 주십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체험하였고,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또한 순종함으로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사하사 우리를 고치시고, 변화시키시며, 새롭게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 맺는 성도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그들처럼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갖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받음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확신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