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31_주일오전-하나님의_열심(창세기32_24-30)-은곡교회-고한율목사.pdf
< 설교원문 >
주일 1,2부 예배 / 본문 : 창세기 32:24 ~ 30절 / 2015년 5월 31일 / "하나님의 열심" / 찬송가 : 35, 279, 321, 54장
지금 스크린에 나오는 그림을 한 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그림으 로 보입니까? 어떤 분에게는 매부리코와 앞으로 뾰족하게 나온 할머니 얼굴이 보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르게 보면 이 그림은 모피 코트 같은 것을 입은 한 젊은 여인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으 로 보입니다. 한 그림이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는 신기한 그림 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는 성경이 꼭 이와 같습니다. 같은 글자로 쓰여 있는 성경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성경 을 는 우리들이지만, 그 신앙생활의 모습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성 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신앙생활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성경을 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을 말씀드리고자 합 니다. 그것은 성경을 볼 때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보아 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바른 방 법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 잘 아시죠? 우리는 아브라함을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왜 아브라함이 위대한 믿음의 조상입니까? 창세기 22장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 함에게 한 명 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부모가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데 아브라함은 딴 말하지 않고 즉시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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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특별한 시 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죽이려 하자, 하나 님께서 못하게 막으시고, 대신 숫양을 주셔서 제사를 하게 합니다. 아 브라함이 당당히 믿음의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기를 으면서 감탄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어떻게 결론을 내립니 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고 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에 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자고 결 론을 내립니다.
물론 귀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경을 는 것은 충분하지 않 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아브라함을 본받자고 결론을 내려도 어떻게 해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게 됩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 이. 그러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성경을 으면 성경은 “믿음의 영 웅” 이기가 됩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기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은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바칠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큰 믿음은 갑자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원래부터 아브라함이 큰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 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원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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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숭배자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믿”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는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창세기 12장부터 21장까지를 보셔 합니다. 지금 그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수요예배 때 지금 창세기를 설교를 하고 있는데, 지난 주 홍수사건까지 말씀드렸어 요. 이제 곧 아브라함 이기가 나올 텐데 자세한 이기는 수요예배에 오셔서 듣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1장까지를 보면 그 중심내용이 이것입니다. 아브라함 은 원래 누구였습니까? 갈대아 우르라는 우상숭배 중심지에 살던 사람으 로, 그의 아버지를 따라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70이 넘은 노인이었고, 아직 자녀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21장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 안에 온갖 사건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 없는 행동을 많이 하 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 친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을 바친 사건은 정확히 말하면 아브라함 의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주인공이 아브라함이 아니 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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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창세기 22장을 고, 아브라함을 본받자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창세기 22장을 으면 서 우리는 우상 숭배자였던 아브라함을 이처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하나님을 보아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처럼 형편없는 우리 또한 그 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실 것을 확신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 22장의 주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우상숭배자 아브라 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 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에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드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의 하나님임을 믿어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주어 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으면서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아닌 그들 을 믿음의 사람들로 만드시고, 사용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은 본문은 곱의 이기입니다. 성경 모든 이 기가 그렇지만, 특별히 곱의 이기는 하나님 중심으로 보셔 합니 다. 그렇지 않으면 곱의 이기가 왜 성경에 기록되었는지 이해하기 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곱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하 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곱은 자신의 지혜와 힘을 가지고 잘 살아보려고 악착같이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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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고, 그의 아버지인 이삭도 늘 하나님과 동 행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곱은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더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곱이 태어날 때부터 잘 나타났습니다. 곱에게는 쌍 둥이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태어날 때 형인 에서가 먼 저 나가려고 하니까 곱이 어떻게 합니까? 먼저 나가는 형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힌 사건이지요. 형의 발목을 잡고 나오는 모 습을 보고 “움켜쥐다”는 뜻의 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곱은 이때부터 자신을 위해서 남을 움켜쥐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곱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있었던 입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와서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그 때 마침 곱은 집에서 팥죽을 맛있게 끓였습니다. 팥죽 냄새를 맡은 에서가 곱에서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곱이 어떻게 말하였습니까?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팔라고 합니 다. 사실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라 니요. 그런데 에서가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지금 죽으면 장자권이고 뭐고 다 소용없으니 팔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곱이 형의 장자 권을 가로 채게 됩니다.
이뿐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이 죽으려 할 때, 이삭이 에서를 불렀습니 다.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을 하여 맛 있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것을 먹고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하 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는 곱이 어떻게 합니까? 어머니와 함께 꾀를 내어서 곱이 에서인 척하며 집에서 한 맛있는 음식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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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아버지께 갑니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이삭은 곱에게 속아서 축 복을 하게 됩니다. 형의 축복을 곱이 이렇게 가로채었습니다.
이처럼 곱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발을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형의 미움을 받아 피난길에 오르 게 됩니다. 20년 간 아버지 집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은 본문처럼 곱은 20년의 피난생활을 마 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가장 걱정이 되는 이 무엇이었겠 습니까? 바로 형 에서입니다. 20년이나 흘렀지만, 형이 아직도 자기를 죽이려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곱이 어떻게 합 니까? 먼저 사람들을 보냅니다. 형 에서가 어떻게 하나 살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로부터 놀라운 보고를 받게 됩니다. 형 에 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 을 들은 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갈 수도 없는 그말로 앞뒤가 막힌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곱은 자신의 지혜와 힘을 의 지하여 성공하려고 몸부림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꼼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시면 곱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그 토록 치열하게 성공을 위해 달려온 인생인데, 지금은 홀로 이렇게 남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온 데 간 데 없고 오직 홀로 쓸쓸이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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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꼭 이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의지 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다 사라지고,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 던 재물이나 권력, 건강이 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 서 이 큰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입니 다. 곱이 지금 처한 상황이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곱에게 어떤 이 어나게 됩니까? 어떤 사람 이 찾아와 다짜고짜 곱과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 했든지 밤새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갑자기 공격을 당한 곱이지만, 곱이 제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을 붙잡는 것 아닙니까? 곱이 그 사람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싸우다가는 곱이 자 기를 놓아줄 것 같지 않자, 곱의 허벅지 관절을 내려쳐 부러뜨립니 다. 그런데도 곱은 그 사람을 놓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곱은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곱이 이처럼 놓지 않고 끝까지 붙든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 늘 본문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곱이 지금 무슨 말을 합니까? 내게 축복하지 아니 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끝까지 붙잡겠다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죠. 지금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해 달라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곱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곱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여행자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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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을 뺏기 위해 습격한 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곱이 계속해서 싸우다보니 상대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곱과 싸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 루어 이겼음이니라”
곱이 축복을 하면 절대 놓지 못하겠다고 버티니까, 그 사람이 곱 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곱이라고 대답하자, 방금 은 말씀을 준 것입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 요 이스라엘이라 하라. 새 이름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 이름, 즉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속에 곱과 싸운 사람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여 러분, 이스라엘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 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여러분, 곱에게 싸움을 건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곱이 왜 끝까지 붙들면서, 허벅지 관절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놓 지 않고, 축복해 달라고 애원한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 분이 하나님 이셨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럴 때 곱은 하나님을 죽기 살기로 붙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곱의 이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무엇보다 우릴 향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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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자신이 기뻐하시는 참된 신자의 모습으로 만들고 마 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곱의 이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곱이 형 에서 때문에 인생의 코 너에 몰려있었습니다. 정말 막막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곱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시기를 바랄까요? 하나님께서 하 나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곱을 도와주시거나, 아니면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에서가 겁을 먹고 되돌아가거나 이런 이 있기를 바라지 않겠 습니까?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 달라고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곱에게 어떻게 대하십니까? 곱을 위해 군대를 보내주셨습니까? 곱을 위해 형 에서에게 나타나 그에게 겁을 주셨습 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곱과만 상대하셨습니다. 바로 곱에게 나타나 싸움을 거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곱을 공격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혀 기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죽기 직전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돕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을 하다니요. 이것 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곱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이 바로 곱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위기를 벗 어나는 것보다,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보다 곱에게 더 중요 한 것이 있다고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곱이 변화되는 것입 니다. 어떻게 변화되는 것입니까? 사람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생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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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곱에게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주신 이유입니다.
곱은 지금까지 곱이라는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사람을 붙잡고, 물 질을 붙잡고, 세상의 좋은 것을 붙잡고 살아왔습니다. 곱은 그의 이름 이면서, 그의 지나온 인생을 요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 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실 수 없었습 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빠져 있던 곱에 게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공격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격은 무척 잔인해 보입니다. 지금 링 위에서 상대 방 선수에게 방적으로 얻어맞아 KO 패를 당한 선수에게 다가가 다 시 그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매우 잔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왜 이렇게 곱을 잔인하게 대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곱이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곱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곱이 하나님의 도움 한 번 받는다 고 변화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곱을 끝까지 밀어붙이신 것입니다. 그말로 이 세 상의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오직 자신과 싸우는 하나님만 눈 에 보이도록 그렇게 밀어붙이신 것입니다. 그 결과 곱이 어떻게 합니 까? 하나님을 붙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을 붙들었는데, 이제 는 하나님을 붙드는 자가 된 것입니다. 곱에서 이스라엘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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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곱이 받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매우 흥미로운 이름입니 다. 그 뜻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입니다. 곱이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곱이 이겼습니까? 곱이 싸움에서 하나님을 이겨서 이 이름을 받은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곱의 허벅지 관절을 부러뜨리셨습니다. 마음만 먹 으면 곱을 완전히 제압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 신 것입니까? 곱에게 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곱에게 져 주셔서 이 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곱에게 져 주셨습니까? 여러분, 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 드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곱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곱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 직 하나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를 온전하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 님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곱에게 싸움을 먼저 거셨고, 또한 이 싸움에서 져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곱에게 영광스러운 이름 “이스라 엘”이 주어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였는데, 그 제목 을 “공격하시고 져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싸움을 하면 왜 합니까? 이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곱에게 이기려고 싸움을 거신 것이 아닙니다. 져 주시려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왜 그렇 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곱을 너무 나 사랑하셔서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공격하시고, 또한 져 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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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느 부모가 자신의 갓난아이에게 질 수 있겠습 니까? 힘으로나 능력으로나 갓난아이에 비해 부모가 월등합니다. 하지 만 어느 부모도 자기 아이를 이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단치고 혼낼 때도 있지만, 뒤돌아서서 우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져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곱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사 랑하십니다. 곱처럼 자기만을 최고로 아는 이기적인 우리를 사랑하십 니다. 그래서 우리를 어떨 때는 공격하십니다. 고난을 주십니다. 시련 을 주십니다. 그러나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리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의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 다. 우릴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셔 합니다. 우릴 향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공격하시고 져 주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 다. 곱 같은 우리를 이스라엘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을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열심을 가지시고 역사하여 주십 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것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하루 속히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곱처럼 너무 멀리 가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속히 돌아오시 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는 법이 없습니다. 인생의 극 심한 시련 속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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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을 더욱 더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곱처럼 끝까지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결국은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열심을 늘 경험하고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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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노트 > : (5/31,오전) / “하나님의 열심” / 창세기32:24~30 / 고한율목사
- 같은 글자로 된 성경이지만, 보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해석과 신앙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 성경을 보는 눈(관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 성경을 볼때 하나님 중심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 '위대한 믿음의 조상’ 이라고 불리워 집니다.
- 아브라함이 당당히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 우리는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을 본받자고 , 그런 믿음을 가지자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 하지만, 이렇게 성경을 읽고 해성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 어떻게 해야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질수 있는가?를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 본받자고 해도 본받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 성경은 믿음의 영웅으로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우리 같이 평범한 신자들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의 큰 믿음은 갑자기 어디선가 솟아난것도, 원래부터 그에게서 있던 믿음도 아닙니다.
- 그것을 이해하려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창세기 12장부터 21장까지의 내용을 모두) 살펴보아야 합니다.
- 아브라함은?
- 갈대아우르라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그 아버지와 우상을 숭배하여 살았습니다.
- -> ‘달의 신”을 모시는 곳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그의 나이 70세가 넘을때에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에게 자녀가 없엇습니다.
- 인간적으로는 내세울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 창 12장~21장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온갖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 이 장들에서 그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가 나오게 됩니다.
- 그런 가운데, 그가 점점 더 신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 따라서,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 따라서, 아브라함을 본받자라고 결론내리기 보다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런, 아브라함을 변화시킨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 오늘 이야기도 야곱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보아야 합니다.
-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자신의 지혜와 힘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꾀를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 그가 태어날때부터, 쌍둥이 형인 ‘에서’가 먼자 뱃속에서 나오려고 할때, 동생 ‘야곱’이 형의 발목을 잡고 나온 사람입니다.
- “야곱” == “움켜잡는 자” 입니다.
- 자신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 형인 에서가 열심히 사냥을 하다 왔을때에, 집에서 야곱은 팥죽을 하고 있었습니다.
- 너무 배가 고픈 에서에게 야곱이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말도 안되는 거래였지만, 단순했던 형을 알던 야곱은 형을 속였던 것입니다.
- 아버지 이삭이 죽으려할때, 형인 에서를 축복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 에서는 기쁜 마음으로 축복을 받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해서 사냥을 하러 나갑니다.
- 그때 야곱은 어머니와 함께 형의 축복권을 가로채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 형인 에서의 것들을 모두 잡아채는 야곱의 인생을 이어갑니다.
- 이렇게 형에게 한 결과, 야곱은 20년간 형으로부터 피난 생활을 하게 됩니다.
-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는 형이 아직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에 대해서 걱정하게 됩니다.
- 형인 에서가 무엇을 하는지 정찰하게 됩니다.
- 에서가 400명의 사람을 데리고 지금 오고 있다고 보고 받습니다.
- 성경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 (창 32:24)
- 우리 인생을 살다보면, 나를 그렇게 든든하게 지켜주던 사람들과 권력,명예,부가 없어지고 나 혼자만 남아있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런데 바로 그때, 야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씨름을 하게 됩니다. 이 싸움(씨름)이 얼마나 치였했던지, 밤새도록 이어지게 됩니다.
- 야곱은 밤새도록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런 상황에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부러뜨리는 상황에서도 야곱이 그 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엇다!
- 26절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그것은 자신을 공격한 이 사람이 누군지를 야곱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 28절 :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 “이스라엘”의 뜻 ==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 야곱이 왜 끝까지 그를 붙들고 허벅지 관절이 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죽기 살기로 붙들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 우리를 자기 백성삼으시고 참된 신자의 모습이 보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주셔서 하나님은 오직 야곱과만 상대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야곱을 공격하셨던 것입니다.
-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인가요? “야곱” 그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이 있엇떤 것입니다.
- 야곱을 위해서 더 중요한 일이 바로 야곱이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 그의 인생에서 “변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아셧던 것입니다.
-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빠져 있던 야곱을 하나님은 공격하셨던 것입니다.
- 왜 그렇게 잔인하게 하셧을 까요?
- 야곱은 또다시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하셧던 것입니다.
- 세상의 그 무엇도 자신의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만 붙들도록! 밀어 붙였습니다.
- 왜 그렇게 잔인하게 하셧을 까요?
- 그 결과, 야곱은!
-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만 붙잡는 자가 된 것입니다!
- 그런데, 정말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습니까?
-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를 부러뜨리고, 야곱에게 져 주신 것입니다.
- 야곱에게 영광스러운 이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엇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하나,!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 마틴 루터의 설표 제목에서는,
- “공격하시고 져 주시는 하나님” 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이 세상에게 어느 부모가 자신의 갓난 아이를 이기는 부모가 있습니까?
- 어떤때는 혼내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는 그 아이를 위해서 울기도 하는 것입니다.
- 그 아이가 바르게 되기를 원하니깐, 사랑하니깐, 져 주는 것입니다.
-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기 위해서..!
- 야곱을 변화시킨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어떤때는 공격(시련)을 주실 것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이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 인생의 극심한 시련속에 계신분이 있습니까?
- 그렇다면, 하나님을 더욱더 붙드시기 바랍니다!
- 세상의 것을 의지하던 분은 그것들을 놓아주고, 그 손으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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