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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06/04,주일-오후) "신앙고백서(28) 칭의(2)" / 롬 5:1 / 고한율목사

(06/04,주일-오후) "신앙고백서(28) 칭의(2)" / 롬 5:1 / 고한율목사

 

오후찬양 예배

본문 : 51

201764

WCF (28) 칭의(2)

 

찬송가 : 327 , 544

 

우리가 흔히 구원이라고 하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공부하면 조금 더 수준 높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무엇보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동행하는 것,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천국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보물이 가득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곳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천국에 정말 많은 보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본질은 그 화려한 겉모습에 있지 않습니다. 천국의 본질은 무엇보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천국에 없는 것이 있어요. 바로 어둠입니다. 어둠이 없습니다. 깜깜한 밤이 천국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햇빛도 필요 없고 등불도 필요 없습니다. 항상 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빛을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천국은 언제나 환합니다.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구원이란 곧 하나님과 다시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구원을 받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5:1을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입니다.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뜻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의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착한 사람, 진실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악인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참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악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악인입니다.

 

자 이처럼 의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이신칭의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뜻이죠.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며 수단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서가 가르치는 칭의에 관한 내용입니다. 칭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신앙고백서 112항 첫 부분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30). “이와 같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의를 받게 하는 도구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케 하는 것이다. 믿음이 칭의의 유일한 도구이다.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믿음이 칭의의 유일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Sola Fide라고 말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이처럼 오직 믿음으로를 주장했던 이유는 당시 로마카톨릭교회가 믿음만이 아니라 선행과 공로를 함께 말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믿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믿음만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필요하지만 선행과 공로도 함께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믿음과 함께 선행과 공로도 필요하다고 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까?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 얻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그것은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느 정도 노력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고, 공로를 쌓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우리가 얼마나 악한 자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에 살펴본 대로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전혀 미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럴 듯 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기준을 대 보면 우리 중에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우리 중에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가슴을 치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바울이 이처럼 가슴을 치며 어리석다고 책망한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쫓아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거짓 사도들이 와서는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도 믿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이 가르침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어리석다고 야단쳤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백 개의 율법 중에 단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젊은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젊은이는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아주 자신 있게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그래 참 훌륭하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나를 따라 오너라이 말씀을 듣자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젊은이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재산이 너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젊은이는 근심하며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몇몇 계명은 그 젊은이처럼 완벽하게 지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부는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다가 율법을 더하려고 하였습니다. 율법으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리석다고 야단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믿음만이 아닌 율법이나 할례 등을 더 하려고 했을까요? 구원을 자기 힘으로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기독교 구원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자신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내 지혜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사람, 오직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사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우리의 믿음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 내게는 믿음이 있고, 저 사람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고 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치 믿음을 내 구원의 근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믿음 자체가 우리의 공로나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믿음은 그 자체로 어떤 능력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당 안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안심하고 이곳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예배당 건물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감히 이 자리에 앉아 계실 수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가 이처럼 안전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예배당 건물 때문입니까? 아니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까?

 

답이 아주 쉽지요. 튼튼한 건물 때문입니다. 만약 예배당이 무너지기 일보 전의 상태라면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세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믿음이 세서 무너지거나 말거나 나는 여기에 있겠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매우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믿음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이루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주겠다고 정하셨기 때문에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워지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우리가 어떻게 가지게 되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결코 자랑이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의롭게 인정을 받는 유일한 수단이 믿음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신칭의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칭의를 얻게 하는 이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이냐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서 112항 나머지 부분을 같이 읽겠습니다(30). “그러나 그 믿음이 칭의된 그 사람 안에 어떤 심리 상태로만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 성취에 필요한 모든 다른 은혜들도 그 믿음의 열매로서 동반한다. 이처럼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한다.

 

자 이 부분은 사실 오늘 오전 설교를 잘들은 성도님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우리들이니까 다시 한 번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아주 쉽게 말하면 칭의를 얻게 하는 믿음, 즉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의 열매를 맺는다입니다.

 

오늘 오전예배에서 살펴본 것처럼 믿음이 모두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 있는 반면 죽은 믿음도 있습니다. 어떤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는데, 그 삶 속에는 믿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성도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생각과 말, 행동 모두에 있어서 믿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에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행함이고,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예수님을 닮지 않은 부분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워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고집대로 살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에 가까운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예수님을 닮지 못한 모습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우리에게 계속 알게 하고 깨닫게 하니 괴로운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지 않고 계속 변화되기 위해 힘쓴다면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그저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우리의 삶을 점점 더 변화시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선행이 아닌 믿음으로만 칭의를 얻지만, 칭의를 얻는 믿음은 반드시 우리를 선행으로 이끌게 됩니다. 예수님을 점점 더 닮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욱 닮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 변화되고, 그래서 선한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