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4, 주일-오전)"좋은 편을 택하라" / 눅 10:38-42 / 고한율목사
여전도회 헌신예배 |
본문 : 눅 10장 38 ~ 42절 |
2017년 5월 14일 |
좋은 편을 택하라 |
찬송가 : 215 장, (헌금) 321 장, 205 장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는 성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양한 이유들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문제에서 발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소홀히 하고, 기도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영적인 침체가 옵니다.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봉사도 힘들기만 합니다. 인간관계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어 갑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환란이나 핍박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의 우선순위를 놓치고 다른 일로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빨리 알고 우선순위대로, 가장 중요한 일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영적침체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초대교회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 간의 구제 문제로 교회 내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이 때 교회의 지도자들인 사도들은 분쟁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일을 해결해 보겠다고,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법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 분쟁의 근본적인 해결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7명의 집사들을 세워서 실제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은 말씀과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는 것임을 우리는 사도들로부터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도 신앙의 우선순위 문제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에 베다니라는 동네에서 마르다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을 심방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집에는 동생 마리아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마르다와 마리아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두 자매의 행동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르다는 너무나 귀한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음식을 대접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참 음식을 준비하다보니 마르다가 힘이 부쳤습니다. 잔치 집에는 항상 손이 부족한 법입니다. 그런데 함께 음식을 만들어야 할 동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둘러보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꼼짝없이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로 가서 불평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입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이 말은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지금 당장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마리아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음식을 다 차리고 난 후에 해도 되는 일이니 지금은 마리아가 음식 준비하는 일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말을 당연한 말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41~42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렇게 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보기에는 음식 준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 네 마음이 너무 바쁘구나. 그래서 너는 마리아가 지금 하는 일이 네 일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단다. 마리아야 말로 지금 해야 하는 최고의 일을 선택했단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르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음식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 않거나, 옳지 않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봉사의 일이 틀렸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지금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마리아가 하는 일,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야말로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최고의 선택을 했고, 그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앙에 있어서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봉사가 중요합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의 일은 아닙니다. 최고의 일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가 성도가 해야 할 최고의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 신앙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잘못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로는 예배가 중요하고, 말씀과 기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봉사와 일들에 치여서 예배와 말씀과 기도가 뒷전 일 때가 많습니다.
심방을 가면 집에서 음식을 대접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음식을 많이 준비하는지, 한 상 가득 반찬이 나와서 밥을 들고 먹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으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고” 이상한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리는 집에 가면 보통 예배가 산만하기가 쉽습니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서 대접하려고 예배 중에도 음식 준비 때문에 부엌을 오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작 심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대접해 주려는 성의가 너무나 감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목사로서는 심방 받는 성도님이 예배를 집중하여 잘 드리는 것이 더 기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속으로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처럼 “성도님 한 가지만으로 족하니까 하나님 말씀 잘 들으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마리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대접하는 일이 너무나 귀합니다. 절대 하찮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더 귀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발아래 앉아서 예수님 말씀 듣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자기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런 성도를 찾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엌에 가서 잔치 상을 차리는 일이 어려운 일입니까? 아니면 예수님 발아래 앉아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일이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는 잔치 상 차리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행사가 있어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얼마나 많이 수고하는지 몰라요. 많은 헌신과 수고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잔치 상을 차리는 일과 예수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일은 육체적인 노동으로 보면 잔치 상 차리는 일이 분명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육체적인 일이 아닌 관계의 일로 생각해 보면 정반대가 됩니다. 잔치 상을 차리는 일은 꼭 그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호텔 주방장의 음식이 맛있을까요? 제 아내가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만들어 준 음식이 맛있을까요? 당연히 호텔 주방장이 만든 음식이 더 맛있습니다. 이건 객관적인 대답입니다. 제 아내가 절 아무리 사랑하고 정성을 듬뿍 담았다고 해도, 호텔 음식보다 어떻게 더 낫겠습니까? 호텔 주방장은 저를 본 적도 없고, 더욱이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음식이 훨씬 맛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잔치 상 차리는 일은 사랑이 없이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그의 말을 듣는 일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하나 힘든 일이 아니지만, 그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KTX요? 비행기요? 아닙니다. 가장 빨리 가는 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너무나 금방입니다. 아쉽습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4초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렇습니다.
반대로 원수와 함께 있으면 어떻습니까? 하루도 천년 같이 느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너무 너무 괴롭습니다. 이렇게 함께 있는 것,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은 결코 아무하고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를 예수님이 사랑하고 칭찬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있고, 말씀을 듣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노동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대단한 업적 쌓는 일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지 종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일이나 우리의 공로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자신을 기대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주님 발아래 앉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찬송하고, 기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분주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왜 이렇게 많은 일을 시키세요? 힘들잖아요! 저 좀 쉬게 해 주세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이다. 내 발아래 앉아서 나랑 이야기하자. 나의 말을 들어보렴. 그리고 너도 내게 말을 해 다오.”
여러분,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들은 것은 가장 최고의 신앙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예수님 곁에 머물 수 없습니다.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주님 곁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나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을 씻깁니다. 옆에 있던 가룟 유다가 그것을 보고는 “이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이것이 일만 할 줄 아는 성도의 말입니다. 300데나리온은 우리 돈으로 1,500만원 정도합니다. 명품 중의 명품 향수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것을 깨서 예수님의 발에 다 부었습니다. 우리도 가룟 유다처럼 그것을 더 좋게 활용할 수 있었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부어주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부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사랑에 비한다면 그깟 비싼 향수가 대수겠습니까? 그 사랑을 바로 아는 성도라면 그 어떤 것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가룟 유다처럼 우리는 생각 하게 될까요? 왜 아까운 것일까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 밥상은 이런 사람들도 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발아래 앉는 것은, 그리고 가장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깨뜨려서 붓는 것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전도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 발아래 앉아서 그의 말씀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있어야 할 자리는 예수님의 발아래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앉아 있기를 예수님이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아래 앉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앉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이 앉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발아래 그 자리를 사모하여, 늘 거기서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여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 곁에 늘 머무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다는 것은 당시 문화 속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랍비, 즉 유대인의 스승들은 예수님처럼 제자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랍비가 말씀을 가르칠 때 제자들은 바로 랍비의 발아래에 앉게 됩니다. 랍비의 발아래는 제자들만이 앉는 특권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리아가 어디에 앉아 있었습니까? 바로 제자의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것도 당시에 여자는 랍비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저 없이 제자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그냥 자리가 비어서 마리아가 마지못해 앉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마리아는 자기 주제에 넘볼 수 없는 그 자리에 들어가 앉은 셈입니다. 남자가 아니면, 제자가 아니면 앉을 수 없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 마리아를 주님이 기뻐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에 나오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마리아처럼 제자의 자리를 침노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저 뒤에 앉아서 그냥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까? 왜 우리가 예배를 많이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이런 마음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우리 모든 은곡교회 성도들이 마리아처럼 제자의 자리를 침노하여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가로막는 것을 모두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소극적인 마음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늘 똑같아 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은혜의 자리, 제자의 자리를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 자리를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마리아가 누렸던 은혜를 우리 또한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봉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늘 주님 발아래 머물러 그의 말씀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마음으로 제자의 자리를 침노하는 성도들을 기꺼이 받으시고, 말씀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리아가 앉았던 자리. 사랑의 자리. 제자의 자리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는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멀리 서서 구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다른 일로 분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언제나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여전도회 회원들이 마리아가 앉았던 자리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들은 마르다처럼 열심히 몸으로도 봉사해야 합니다. 몸으로 봉사하는 것도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먼저는 예배의 자리, 말씀과 기도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항상 사모할 때 우리는 더욱 더 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여전도회 회원들이 마리아처럼 예배와 말씀, 기도의 자리에 항상 있음으로, 더욱 큰 은혜를 받아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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