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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05/08,주일-오전) "주님 안에 있는 가정" / 엡 6장 1 ~ 4절 / 고한율목사

(05/08,주일-오전)  "주님 안에 있는 가정" / 엡 6장 1 ~ 4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1 장, 370 장, 559 장, 171장 1절 // 교독문 : 98번

160508-주님 안에 있는 가정-고한율목사.pdf

 저는 은곡교회를 목회하면서 항상 3가지를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님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3가지 목표입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은곡교회 성도님들이 항상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에 반대되는 것을 우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교회의 불행은 교회 안에 성령에 속한 사람보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쫓아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적은 힘과 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몸부림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주셨는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두 손 안에 있는 물만 가지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에 속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깊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바다와 같은 사랑과 은혜,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점점 더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바다와 같은 사랑과 능력, 은혜를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 시간이 흘러가면 저절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갓난아이를 내버려 두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죽습니다. 갓난아이가 크려면 잘 먹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할 것이 많습니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말씀에 늘 순종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게 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오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사회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소원하는 두 번째 내용입니다.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할수록 그 가정과 교회, 사회생활이 풍성해지고 행복해 질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앙생활 잘하면 하나님께서 만사형통을 주신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성도의 삶 속에는 고난이 계속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도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한 성도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셔서 결국은 모든 일을 선하게 하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좋은 일들이 계속 주어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성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에서의 생활 또한 풍성하고 행복해집니다. 세 번째는 이처럼 우리가 성숙하고 성장하는 믿음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과 교회,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세상을 향해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함께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 안에서 참으로 풍성하고 복될 때 우리의 증거와 영향력은 더욱 더 강력해 질 것입니다. 


 저는 저와 우리 모든 은곡교회 성도님들이 이 세 가지 목표에 다 이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적으로 항상 성숙하고 성장하는 성도, 그래서 믿음 안에서 행복한 가정과 교회, 사회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 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힘 있게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 중에 특히 이 부분을 주목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성숙과 성장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성도님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을 긴밀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어떤 잡지를 읽다가 은퇴하신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교회를 담임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기자가 한 평생 목회하면서 무슨 일이 가장 힘들었고 지금까지도 후회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때 목사님은 제가 생각할 때 의외의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교회 건축이나, 교인과의 갈등 뭐 이런 것을 말씀하실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평생 목회하는 중 가장 힘들었고 후회스러운 일은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다시 목회를 하게 된다면 가정을 잘 돌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끼쳤던 목사님이 정작 자신의 가정, 자신의 자녀에게 바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따로 있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어버이날과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성도인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이고, 둘째 부분은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입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가 부모를 대하든지, 부모가 자녀를 대하든지 이 모든 일이 모두 “주님 안에서”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들에게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냥 순종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냥 교훈과 훈계가 아닙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입니다. 


 이처럼 자녀들이 부모를 순종하는 일이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나 모두 “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 안에서”라는 말의 뜻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의 뜻은 “주님의 통치 안에서”, 혹은 “주님의 주권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여 그 명령에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 


 즉 오늘 사도 바울이 자녀들과 부모들에게 주는 말씀은 그저 도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성도들은 마땅히 주님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주님 때문에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되고, 주님 때문에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 가정생활을 한다면, 곧 그 가정이 주님이 다스리는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다스리는 복된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주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이 주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질서를 세우셨는데,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화평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질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지만, 화평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질서를 주셨습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두어서 모든 모임들이 평화롭게 유지되도록 한 것입니다. 


 가령 가정의 경우 부모를 윗사람으로, 자녀들을 아랫사람으로 두어서 가정이 화평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질서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으로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나보다 더 힘이 많고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세를 주어서 나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권세를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다스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써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특히 중요한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대는 사람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학벌이나 능력, 배경 등을 평가하여서 그 사람의 값어치를 따집니다. 일종의 몸값이죠. 몸값이 높으며 높을수록 존경과 대우를 받게 됩니다. 반대로 몸값이 낮으면 낮을수록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그저 나를 낳아준 부모라고 해서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능력 있느냐에 따라서 좋은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로 나누어집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았는데, 강남에 초특급 산후조리원들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 2주 동안을 있게 되는데, 그 비용이 수천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합니다. 은행 빚을 져서라도 거기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비싼 곳에 들어가려고 하는지를 물었더니, 그 곳에 오는 산모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상위 1% 사람들이랍니다. 그래서 거기에 들어가면 그들과 함께 며칠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친해지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산후조리원을 나와서도 자연스럽게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아이에게 좋은 인맥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인맥을 맺어주기 위해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산후조리원을 빚내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능력 있는 부모라는 것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능력 없는 부모는 존경받을 수 없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부모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부모를 우리에게 세워주셔서, 그들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율법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는 매우 엄한 벌이 주어졌습니다. 가령 부모에게 욕을 하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죽이라고 율법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한 일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 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없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제 5계명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형통의 복을 약속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공경하는 자를 반드시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임을 알고,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자기 뜻에 순종한 우리 성도들에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누릴 복을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세상의 생각이나 관점을 가지고 부모를 평가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를 세워주셨음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듯 우리 부모를 섬긴다면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부모를 잘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자녀가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고 순종해야 함을 말씀한 후에,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주 안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서 “부모들아”라고 하지 않고, “아비들아”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당시 자녀 양육하는 일을 아버지들이 전적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로 하면 부모들이라고 바꿔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먼저는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부모 마음대로 자녀들을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울 당시 아버지들은 자녀에 대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시대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록에 보면 다 큰 아들을 때리고 옥에 가두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죽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딸의 경우에는 말을 잘 안 들으면 노예로 팔아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들을 그저 자신의 소유로 생각했던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바울의 말씀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바울은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했을까요? 그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에서 난 자녀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신 자녀, 즉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내 아들, 내 딸이라 하더라도, 우리 성도들은 이 아들과 딸이 원래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어찌 우리의 마음대로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고, 학대하는 일들이 있는 것은 그 자녀를 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소유인데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것으로 알고, 소중하게 대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4절에 보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교훈은 훈련을 뜻하는 것이고, 훈계는 말로 하는 책망을 뜻합니다. 즉 자녀를 양육할 때 주께서 보여주신 훈련과 책망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신약성경 앞에 있는 네 권의 성경을 우리는 복음서라고 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4권이 있는데, 그 안에는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필요한 많은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그 지혜는 바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양육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내용 안에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시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명의 제자들을 양육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늘 부족하고 못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3년의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온유와 겸손으로, 어떤 때는 엄한 교사의 모습으로 제자들을 양육하셨고, 실패하고 배반한 제자들을 끝까지 붙들고 품어주셔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들로 세우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제자 양육 모습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에 꼭 필요한 많은 지혜를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양육 중에서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꼭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본받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저 말로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삶으로 모범을 보이시고, 그것을 따라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본받음의 원리야말로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10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5가지 진짜 이유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2번째 이유가 이렇습니다. “십대들은 그들의 부모가 교회를 우선시 하지 않기에 그들도 교회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여러분 말로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게 됩니다. 


 제가 전에 사역할 때 중고등부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때만 되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학원에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 안 나오고 학원가는 아이들 중에 그 부모가 교회 중직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부모가 시험 때니까 그냥 학원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부모가 그렇게 말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 아이가 나중에 과연 하나님을 믿는 것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교회는 가라고 하니까 나오겠죠. 하지만 인생의 큰 위기가 닥칠 때 그 아이가 정말 하나님을 찾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믿음을 가볍게 여기듯이 그 아이도 믿음을 가볍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본받음의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보인 그 모습을 자녀들이 똑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 척하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7절에서 아주 엄하게 경고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예수님께서 그 형편없는 제자들을 결국 위대한 복음의 사도들로 세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본받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말과 행동으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치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핵심은 바로 본받음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주님의 방식을 따라 잘 양육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어, 수학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이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 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반드시 복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우리가 잘 기억하여, 우리 가정이 주님 안에 있음을 알고, 주님을 섬기듯 부모를 공경하고, 주님이 보여주신 모습처럼 자녀를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가정들이 주님 안에서 복된 가정으로 든든히 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