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수) "삼상 강해(13) 에벤에셀의 하나님" / 삼상 7장 5 ~ 14절 / 고한율목사
(04/13,수) "삼상 강해(13) 에벤에셀의 하나님" / 삼상 7장 5 ~ 14절 / 고한율목사
찬 : 279 장, 301 장
160413_에벤에셀의 하나님-고한율목사.pdf
우리는 지난주에 사무엘의 말씀사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2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전쟁에서 패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졌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져온 것은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믿음을 고치기 위해서 전쟁에서 패하게 하시고, 뿐만 아니라 언약궤도 빼앗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지금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에 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도 빼앗기도록 하셨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고난을 주십니다. 어려움과 갈등을 주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그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우리의 잘못된 믿음을 고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유익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율례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더욱 더 하나님께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편기자와 마찬가지로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승리를 얻으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큰 패배를 당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기는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이용하던 자들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7: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을 이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무엘의 말씀 사역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20년 동안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7:3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20년 동안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라고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만이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처럼 20년 동안 지속된 사무엘의 말씀 사역으로 말미암아 강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의 심령에 뿌려져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참된 부흥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교회의 참된 부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배당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고, 좋은 프로그램이 많아야 하고, 주차장이 잘 갖춰지고, 사회에서 명망 있는 성도들도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다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교회 부흥의 본질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사람이 많이 모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교회의 참된 부흥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교회가 인기를 끈 것일 뿐입니다. 교회의 참된 부흥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모든 성도들이 그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 때 그것을 교회의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는 것이 참된 부흥의 본질입니다.
사도행전 6: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졌다는 것은 말씀이 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여러 사람들이 말씀을 들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말씀에 복종하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바로 교회의 부흥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단지 예배 출석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예배당에 모여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뿐이라면 그것은 결코 부흥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부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진정한 말씀의 부흥이 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쓸 때 거기에 부흥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20년 동안의 말씀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소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미스바는 전에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했던 뜻 깊은 장소였습니다(삿 20:1).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6절입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함께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지 말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하루 종일 금식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물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 합니다. 첫째는 죄입니다. 즉 물을 여호와 앞에 붓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죄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회개를 뜻하는 것이죠. 둘째는 생명입니다. 즉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쏟는다는 것이죠. 이것은 회개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을 부음으로 자신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 종일 금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금식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금식은 나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협박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어주면 지금부터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태도가 바로 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의미로 금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왔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변화된 모습인지 모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성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미스바에 모여서 물을 부으며 하루 종일 금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소망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변화된 모습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모습은 블레셋이 다시 한 번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더욱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 하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공격의 기회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 때 블레셋 군대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승리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행동을 하였습니까?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승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10절입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통해서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고,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로 거둔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을 세웠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이 승리를 기념하여 돌을 세우고는 그 돌 이름을 에벤에셀, 즉 도움의 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 도움의 돌을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에벤에셀’은 이미 있던 지역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도 2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패한 곳이 바로 에벤에셀이었습니다(4:1). 그러므로 에벤에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치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심판을 받은 곳이 에벤에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에벤에셀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에벤에셀은 20년 전에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망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승리를 거둔 장소입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장소에 돌을 세우고, 그것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름으로써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
20년 전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패배한 이스라엘이 더 이상 되지 말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언제나 “여기까지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죄를 회개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진정한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있는 여기까지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지 말고,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셔서,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