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주일-오후) "드보라와 바락" / 삿 4장 1 ~ 10절 / 고한율목사
(04/10,주일-오후) "드보라와 바락" / 삿 4장 1 ~ 10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23 장, 347 장
160410_드보라와_바락_고한율목사.pdf
우리는 지난주에 왼손잡이 에훗을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에훗이 왼손잡이라고 할 때 그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보통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른 손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바른 손이라고 했습니다. 오른 손이 바른 손이면 왼손은 무엇이 됩니까? 아무튼 왼손잡이라는 것은 보통보다 못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에훗을 사사로 세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보통 사람보다 못한 사람을 세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그런 못난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는 일에 사람의 능력이 아무 상관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상은 유능한 사람, 가진 사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릅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능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충성된 사람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 위해서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에훗을 통하여 80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안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서 우리가 계속 보듯이 문제는 사사가 죽은 직후에 항상 일어나게 됩니다. 에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훗이 죽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에훗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지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공식이죠.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을 통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가나안 왕 야빈에게는 매우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군대 장관 시스라가 지휘하는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진 군대입니다.
당시 철 병거라고 하면 그야말로 최첨단 무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 식으로 하면 세계 최대 군사국가인 미국이 소유하고 있는 최첨단 전투기나, 미사일, 항공모함 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무기들이 얼마나 위력이 큰지 북한이 어떤 군사적 도발을 할 때, 꼭 미군의 전투기와 항공모함이 우리나라에 오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이 꼼짝을 못합니다. 무기를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이처럼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 병거 900대를 보면서 꼼짝을 못하였습니다. 그 두려운 무기 앞에서 벌벌 떨며 무려 20년 동안 심한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가 점점 심해지자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다시 정신 차려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쉽게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 부르짖음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야말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배반해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번에 세울 구원자, 사사는 보통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이 보통 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최강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보통의 사람으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구원자,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사실 이 구절은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원문에 맞게 번역을 다시 하면 “드보라는 여자이고, 여선지자이며, 랍비돗의 아내인데 그 때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입니다.
무엇이 제일 강조되고 있습니까? 드보라가 여자라는 사실이 가장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드보라가 여자라는 사실이 3중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자이고, 여자 선지자이고, 랍비돗이라는 남자의 여자, 즉 아내라는 것이죠. 이처럼 드보라가 여자인 것을 세 번이나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철 병거 900대라는 최강의 군대 앞에 내놓은 카드가 바로 여자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한편의 코미디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 상대가 될 수 없는 상대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다른 성경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였습니다. 그는 키가 거의 3m에 달할 정도였고, 그의 힘은 견줄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어떤 이스라엘 병사도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도망가는 군사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골리앗을 물리칠 카드로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바로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기 위해 전쟁터에 왔다가 골리앗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군사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골리앗에게 보내서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가진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물매였습니다. 돌맹이가 그의 무기였습니다.
골리앗을 그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골리앗이 너무 기가 막혀서 네가 개를 잡으려고 지금 나왔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던지 작은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 결국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보면서 다윗이 정말 그의 힘으로 골리앗을 이겼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이기게 하신 것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싸움입니다. 절대 골리앗이 질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이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기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900대의 철 병거와 여자 드보라는 절대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수만명의 군사가 맞서도 900대의 철 병거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물며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900대의 철 병거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내세우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승리를 주시겠다는 의미로 여자인 드보라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보통 남자가 하는 것인데 왜 남자를 세우지 않으셨느냐는 것이죠. 전에 본 왼손잡이 에훗처럼 남자 가운데 좀 부족한 사람을 세워도 될 텐데, 왜 굳이 여자를 세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여자는 사사가 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전쟁은 남자들이 수행했기 때문에 남자를 사사로 세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드보라는 사사가 되었지만, 전쟁터에 직접 나가서 전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투는 남자인 바락과 군사들이 하였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바락을 사사로 세워서 구원했으면 될 텐데, 왜 여자 드보라를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드보라가 바락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락이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군사로 이끌고 가면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 900대를 모두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락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드보라가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락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락이 뭐라고 드보라에게 말하였습니까? 8절입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바락은 드보라에게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승리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사인 당신이 직접 나서야 자기도 나서겠다는 것이죠.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왜 여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는가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사사로 세울 수 있는 남자가 이스라엘 가운데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군대 장관으로 세울 만한 바락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드보라를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바락이 이 정도인데 다른 남자들은 말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여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줌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얼마나 유약하며, 불신앙 가운데 있었는지를 꾸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마땅히 나서야 할 전쟁에 사용할 남자가 없어서 여자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바락이 혼자서는 못 가겠다고 말하자 바로 드보라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9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드보라는 즉시 내가 함께 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전쟁에 승리를 하더라도 바락에게는 영광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번 전쟁의 영광은 바락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지 않았지만, 드보라와 바락이 이끈 이스라엘 군사는 시스라의 최강 부대를 격파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가 오게 하셔서 강물이 불게 하시고, 그래서 철병거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철병거가 무용지물이 되어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시스라는 병거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헤벨이라는 사람의 집을 지날 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시스라는 그 집에 숨어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이 때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와서 시스라의 머리에 박아버렸습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였던 것입니다.
시스라를 뒤쫓던 바락이 야엘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스라는 죽어 있었습니다. 드보라의 말대로 여인의 손에 시스라가 죽었고, 결국 바락은 영광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사사기 4장은 그야말로 여자로 시작해서 여자로 끝마치는 이야기입니다. 남자의 역할이 전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4:20절에 보면 시스라가 야엘의 집에 숨게 되었을 때, 야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할 때 ‘어떤 사람’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남자입니다. 즉 여기 어떤 남자가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라의 말 그대로 사사기 4장에는 그 어떤 남자도 없었습니다. 드보라와 야엘과 같은 여자 밖에 없습니다. 바락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드보라를 더 의지하여 영광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의 책을 보니까 오늘 본문을 설명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습니다. “남자들이여 각성하라!”
오늘 남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든 남자 성도님이 신앙적으로 더욱 각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드보라 때와 같은 경우가 교회 가운데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이 말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교회에서 일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자가 더 우월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께서 남자 성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여자 성도에게 주신 사명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남자 성도들이 사회생활은 적극적이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소극적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심방을 갔는데, 아내가 아주 신앙심이 깊은 집사님이고, 남편 집사님은 주일만 교회에 나오시는 정도였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내 치마 붙잡고 천국만 가면 됩니다.” 꼭 바락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 남전도회원들은 그런 마음을 갖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따라 모든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드보라에게 맡겨놓고 난 바락에 만족하겠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바라기는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모든 남전도회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일을 하느냐, 작은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 할 때 우리를 충성스럽게 드리느냐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뜻을 분명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바락처럼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영광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을 소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로 드러나서 우리가 있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어느 곳에 있든지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 가운데 높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은곡교회 남전도회를 귀히 사용해 주실 것을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