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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04/09,주일-오후) "남자들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 딤전 2장 8절 / 고한율목사

(04/09,주일-오후) "남자들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 딤전 2장 8절 / 고한율목사

찬송가 : 310 장, (헌금) 320 장, 361 장



 남전도회 헌신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은곡교회에 속한 모든 남자 성도님들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고, 하는 모든 일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흔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남자의 위치 변화일 것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은 남성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라고 하지요?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못 낳고 딸만 낳으면 죄인 취급 받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위치는 거의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의 남자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딸을 낳으면 더 기뻐합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면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은 다 쓸데없고 딸이 최고다’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시대가 변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머가 있습니다. 여러분 ‘간 큰 남자 시리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나이별로 간 큰 남자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유머입니다. 20대에 아내에게 “밥 줘”라고 하면 간 큰 남자랍니다. 30대는 아내에게 “어디 가?”라고 물으면 간 큰 남자래요. 40대는 외출하는 아내를 쳐다보기만 해도 간 큰 남자이고, 50대에는 “몇 시에 집에 와?”라고 물으면 간 큰 남자랍니다. 그리고 60대는 “여보 따라가도 돼?”라고 물으면 간 큰 남자래요. 그런데 제가 어느 분에게 들은 것인데 70~80대 간 큰 남자는 누구냐? 아침에 깨서 눈을 뜨기만 해도 간 큰 남자랍니다. 우리 중에 간 큰 남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처량하게까지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비록 우스운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지난 시절 남자가 부당하게 잘못 행동한 것을 꼬집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남자들이 그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 위에 군림하려 들지 않고 동등하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였다면 이러한 농담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남자들이 현재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이나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남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자의 올바른 모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매우 짧지만 그 안에 아주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짧은 말씀이지만 단어 하나, 하나에 중요한 뜻을 담고 있어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은 매우 권위 있게 주신 명령입니다. 8절 마지막에 보면 “원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희망한다’, ‘바란다’ 정도의 뜻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명령에 가깝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사도 바울이 쓰고 있는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남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그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의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 남자에게 주신 명령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말씀과 함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는 것은 신앙생활에 힘쓰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대체적으로 한국교회는 남자보다는 여자 성도들이 훨씬 더 열심히 신앙생활합니다. 교회 안에 여자 성도가 남자성도보다 훨씬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교회 봉사도 많이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열심히 안 하는 남편들이 아내 치맛자락 붙잡고 천국 가겠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심방을 해 보면 많은 경우 남자 성도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아내 되는 여자 성도님들이 말을 다합니다. 가정의 영적인 주도권이 아내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남편이 주도하는데, 신앙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항상 남자 성도들이 끌려 다니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남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신앙생활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흔히 바깥일에 바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시간이나 체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더욱 신앙생활에 힘을 써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왜 믿고 의지합니까? 우리가 부족하여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삶이 치열하고 힘들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바빠서 기도 못하고 성경 못 읽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없어서 기도 못하고 성경을 안 읽는 것입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새벽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고,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골프 좋아하는 분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필드에 나갑니다. 


 신앙생활이 정말로 필요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시간과 환경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를 포함한 우리 남자 성도들은 지금보다 더욱 분발하여 신앙생활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으로서 단지 경제적인 부분만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단순히 기도하라고만 말씀하지 않고,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무조건 손을 들고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손을 들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손을 드는데, 어떤 손을 드느냐 바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이라는 것은 특별히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즉 기도할 때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사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이해할 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신앙심은 참 좋은 것 같은데, 삶은 개떡 같아”라는 말을 합니다. 종교생활은 참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신앙심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함께 갑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최고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두 가지로 모든 계명을 요약하셨는데,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참된 신앙 안에는 이 두 가지,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반드시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은 신앙심은 좋은 것 같은데, 삶은 개떡 같다는 말은 절대 성립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정말 신앙심이 좋은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 힘쓴다는 것이 단지 교회 생활에 힘쓰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있는 가정과 일터, 사회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음 좋은 분이라고 인정받는데, 가정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아주 훌륭한 분으로 통하는데, 직장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랄한 분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 사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는 바른 신앙을 가졌느냐를 평가하는 독특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술과 담배입니다. 요즘에는 그래도 좀 덜한 것 같지만 술과 담배를 안 하는 것이 마치 훌륭한 성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신앙인이 술과 담배를 안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고, 담배처럼 명백하게 몸을 해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우리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려는 것은 술과 담배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술과 담배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까 이것보다 더 큰 잘못과 죄에 대해서 쉽게 눈감아 버렸습니다. 가령 믿는 남편이 가정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남편은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생활도 모범적입니다. 하지만 가정을 잘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보다 큰 죄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사에서 승진이나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모함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이것은 술,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죄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드러나는 경건생활의 모습만 중요하게 여길 뿐, 이러한 것들은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지나가게 하는 꼴입니다. 참된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일터입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의미심장한 단어가 나옵니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하시면서 어디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까? “각처에서”하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장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정과 직장을 교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기도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쓰는 소금과 빛입니까? 교회입니까? 아니에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가정, 일터, 사회에서 우리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각처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각처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분노와 다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분노와 다툼은 우리의 기도를 무력화시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1:25절에 보면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분노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다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다툼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교회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기도의 소리는 작아지고, 기도의 소리가 커지면 사람의 목소리가 작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서로를 용납하고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면서 그 기도를 가로 막는 장애물인 분노와 다툼을 없애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방해를 받지 않고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남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서 모든 곳에서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우리 모든 남전도회 회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적인 섬김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남전도회원들을 붙들어 주셔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삶을 통해 모두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로 세우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