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오후) "살전 강해(3) - 믿음의 소문이 나는 교회" /살전 1:6 ~ 10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313장, 288장
150705_31오후_믿음의 소문이 나는 교회-(살전1장6-10절)_고한율목사.pdf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진정한 성도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확신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고는 그 삶이 변화된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진짜 성도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그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저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는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을 그들은 잘 알고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구체적인 소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그들은 여러 고난과 어려움을 인내해 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삶이야말로 그들이 구원받은 참 신자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진정한 성도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성령을 통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은 우리에게 지식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을 건드려서 감동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무리 위대한 말이라도 우리 영혼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죄로 물든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전해지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악하고 단단한 심령이라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은밀한 죄악을 들춰내고, 잘라내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충만히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가 읽은 6절에서도 말씀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환난과 성령의 기쁨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많은 환난 속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논산훈련소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데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는 곳도 편하지 않고, 먹는 것도 입에 잘 안 맞고, 게다가 발목에 부상이 생겨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발목이 너무 아파서 의무실에 가려고 했더니 교관이 자기 고생시킨다며 기합을 주었습니다. 기합 받으면서 의무실에 가는데 얼마나 서글프던지요.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관이 자기는 쉬어야 하는데, 너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다고 땅을 기어서 교회에 가도록 했습니다. 교회 도착했는데, 옷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에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책이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던 중 한 말씀이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시편 4:7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내 상황이 좋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시는 것이구나. 이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정말 제 마음에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의 삶은 똑같았지만, 제 마음이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하면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주어지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면 그 기쁨을 빼앗아 갈 것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비록 많은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성령의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6절 하반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을 말하는 것이고, ‘주’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들으면서 먼저 그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을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사람을 본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그 일행들이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을 본받았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본받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도에 있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됩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복음은 우리의 말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전하는 복음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도의 간디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모습이 복음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에 와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 일행의 삶을 본받는 자 되었고, 결국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입으로 전하는 일을 힘쓰는 동시에, 또한 복음대로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서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더욱 능력 있게 전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칭찬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여기서 바울은 2가지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렸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직 어리고 연약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그 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극렬하게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학자들은 바울이 3개월 정도 데살로니가 도시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것이 맞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 그 역사가 얼마되지 않은 갓난 아이와 같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런 마음과는 정반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너무나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해 갔습니다. 아직 갖춰진 것도 많지 않은 교회였지만, 이미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 사람들이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성경 지식이 많아야 꼭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다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알면 전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전했던 복음의 내용이 오늘 본문 9~10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전했던 복음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참되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 기본적인 복음의 내용에다가 자신들이 이 복음을 받고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지금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였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저 받은 복음에 감사하며, 구원에 감격하는 것에 만족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어린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받은 복음과 구원의 감격을 주변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힘썼던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러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교회로서 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은곡교회도 다른 무엇이 아니라 복음의 열정이 넘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구원의 감격을 우리 안에만 간직하지 말고, 우리 주변에 널리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삶이 더욱 주님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만 전해지는 복음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함께 전해지는 복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비록 어린 교회였고, 또한 여러 환난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그런 상황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닮은 교회가 되었고, 또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는 복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은곡교회도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부족함과 약점이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매여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여 힘 있게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은곡교회가 각처에 소문이 나되 다른 무엇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믿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소문이 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그런 교회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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