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주일-오전) / "의인을 지키시는 하나님” / 시편 125편 1 ~ 5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63장, 380장, 419장, 620장(3절만)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는 특별히 온가족 새벽기도회로 모였는데,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많은 성도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유치부 아이로부터 시작하여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우리 자녀들과 장년 성도들, 갈렙회와 안나회까지 그야말로 은곡교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드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기도회 후에는 구역회와 몇 분 권사님과 집사님들의 수고로 맛있는 곰탕으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식사하는 그 자체로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다음 번 온가족 새벽기도회에는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님들도 참석하여 함께 은혜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특별새벽기도회를 마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특별새벽기도회가 과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도움을 줄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분들이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받은 은혜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정말로 변화되었는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제가 중고등부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도해 오면서 확실히 아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련회 때 받은 은혜의 유효기간은 정확히 두 달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는 그렇게 냉랭하던 중고등부 아이들이 수련회만 가면 변합니다. 얼마나 뜨겁게 찬양하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몰라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은혜 받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면 이 아이가 뭔가 큰일을 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수련회 마치고 교회에 돌아오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정확히 두 달을 넘지 못합니다. 수련회 다녀 온 지 두 달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수련회 전과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우리는 쉽게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 은혜로 말미암아 실제로 삶이 변화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이 수련회 가서 큰 은혜를 받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왜 곧 이전 모습으로 되돌아갈까요? 은혜를 받은 자신을 제외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부모님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공부만 하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학교에 가도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이 여전히 괴롭힙니다. 정신 차리고 하나님을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어 보지만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IQ가 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이처럼 나는 은혜를 받았는데, 현실은 이전과 똑같다 보니까 결국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고, 이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고등부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한 집사님과 이야기를 잠시 나눴습니다. 집사님은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 안에 있는 신앙적인 갈등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옳고,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다보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배 시간에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가면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돈과 명예, 권력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 쫓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은 실패자로 간주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이 때문에 배가 깨져서 어떤 외딴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서 깨어보니 그 곳 주민들이 자신을 모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왔다고 자기들끼리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상하게 생긴 데가 없는데, 무슨 말인가 생각하면서 마을 주인들을 쳐다보았는데, 모두가 외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눈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돈과 권력과 명예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데, 신자들은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을 하니 이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과 현실의 큰 차이 속에서 우리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아주 쉽게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교회 속에서는 교회 식대로, 세상 속에서는 세상 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을 때는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지만, 교회 밖,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 사람들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분법적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두 세상을 따로 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자 하는 성도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세상을 따로 생각하며, 따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위선적인 신앙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신앙입니다. 주님은 이런 위선적인 신앙에 대해서 엄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5~16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교회에 한 발, 세상에 한 발,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주의해야 들어야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인 우리들은 믿음과 현실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현실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생활 방식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명한 믿음 때문에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73:2~4절입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이 믿음 좋은 시편기자가 자신이 시험에 들 뻔하였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의인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재앙을 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성경의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그 모든 일에 형통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자신이 이 악인을 질투하는 마음까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지, 악인이 이처럼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73:4~5절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악인들의 삶을 끝까지 살펴보니 더 기가 막혔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아주 건강하게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평안하게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이 세상에는 정의가 있는 것입니까? 정말 하나님은 이 세상에 계시냐고 시편기자가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의 독재자들이었던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죽을 때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평생 악한 짓을 했음에도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라고 엄청난 고통 가운데 죽어야 하는데, 죽을 때도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동상 앞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하죠. 이럴 때 우리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가 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지금 시편 기자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 하던 시편 기자에게 놀라운 깨달음이 주어졌습니다. 17~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편 기자는 악인들이 이 세상을 살 동안 너무나 형통하고, 죽을 때조차도 평안히 죽는 것을 보면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악인을 편드시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마침내 그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악한 짓을 하고도 형통하게 살았고, 죽을 때조차도 평안이 죽었던 그들이 그 후에 영원한 파멸 가운데 던져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너머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악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은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하시는 분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시편 9:8절에 보면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성공한 삶을 살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애슐리 매디슨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해킹을 당하여서, 회원의 정보가 유출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몇 명의 사람이 자살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관둬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애슐리 매디슨이라는 사이트가 이미 결혼한 남자와 여자를 대상으로 서로 만남을 갖게 하는 사이트였기 때문입니다. 즉 불륜을 저지르도록 하는 인터넷 사이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 회원인 것이 들통 난 사람들 중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홈페이지에 가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 피우세요” 이 말이야말로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말에다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 피우세요. 하지만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서, 마음껏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의 생명을 다한 후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 하다가 악인의 종말을 깨닫고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편 73:25~26절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악인의 종말을 깨달은 시편 기자는 오직 주님만이 나의 의지할 반석이며, 영원한 분깃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보이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이러한 깨달음이 언제 주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으로 말미암아 고통하던 시편 기자가 언제 악인들의 비참한 종말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악인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에 악인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얻게 되는 정말 중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잊혀 지게 됩니다. 그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다시 예배에 나와서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 때문에 잊어 졌던 말씀이 다시 내 속에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옳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시편 기자가 악인이 죽은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이전에는 몰랐겠습니까? 분명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악인들이 너무 떵떵거리며 잘 사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잊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시편 기자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게 될 때에, 악인에 대해 고통 했던 마음이 다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시편 125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1~2절을 우리가 다시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여러분 이 말씀이 지금 여러분에게 어떻게 와 닿습니까?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 얼마나 큰 격려를 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신자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 영원히 두르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그것을 빙 둘러 있는 산들로 말미암아 어떤 군대로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그런 요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그렇게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격려의 말씀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직면하게 되면 이런 말씀이 생각나지 않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큰 병에 걸린다든지, 자녀가 시험에 떨어진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를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끝까지 붙들어 주신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면서 절망하던 시편기자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회복하였듯이, 우리는 성경과 예배를 통하여 계속해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더욱 더 견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악인이 형통하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망한다고 우리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말이 거짓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만이 복된 삶인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매주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한 까닭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느 새 우리는 세상의 말을 듣고,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일날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때, 우리는 이미 이전에 들었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더욱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은 어떤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늘 들어왔던 말씀을 다시 확인하고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확인을 통해 우리가 다시 세상에 나갔을 때,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좀 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5편은 의인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편을 그저 눈으로 한 번 읽지 않고, 입으로 외워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오랜 순례의 길을 걸어갈 때 이 찬송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부르고, 암송하는 동안 그들 마음 가운데는 의인을 지키시며,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더 분명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면서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시편 기자가 성소에 들어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가 변화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걱정하고 있습니까?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시온 산같이 너를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 내가 산이 예루살렘을 두름 같이 너를 둘러 영원히 지켜주겠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듣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우리 심령 가운데 확신되어질 때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자의 참된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기자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현실을 이길 은혜를 얻었듯이 예배하는 우리 모두 또한 그런 은혜를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배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간절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현실에서 승리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이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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