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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8/30,주일-오후) / "살전 강해(10)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라” / 살전 4:1 ~ 8절 / 고한율목사

(8/30,주일-오후) / "살전 강해(10)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라” / 살전 4:1 ~ 8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266 장, 420 장

 우리가 주일 오후찬양예배 시간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제 4장을 보고자 합니다. 1~3장까지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모범적인 교회인지에 대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힘썼는지 대해,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알기 위해 디모데를 보낸 일에 대해 차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안에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와 사랑, 감격 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4장부터는 완전히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바울은 지금부터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는 내용을 쓴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구하고 권면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너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잘 살펴보면 이것은 성경 전체가 성도인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은 성도인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웃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와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두 가지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시내산에 오게 하셔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 전체를 요약하여 주신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관련된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우리가 이웃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이웃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은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를 분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가족조차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하고, 심지어 폭력과 살인도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2:37~4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모습이 같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라고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간디는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이렇게 글을 썼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른 믿음이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기에 바른 믿음이란 예수님을 닮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우리 주변 사람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는 명목상의 신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쓰는 참된 신자입니까? 우리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면서 또한 이처럼 구원받은 신자가 마땅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참 귀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 가르침에 잘 순종하였습니다. 1절 하반절에 보시면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지금 바울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로부터 배운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이미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지금하는 것처럼 더욱 많이 힘쓰라고 말할 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2절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주신 명령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친 말씀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가르친 내용은 바로 주 예수로 말미암은 명령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항상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고 있었던 초대교회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다서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여기서 꿈꾸는 사람들이란 자신이 꾼 꿈을 통해 참된 계시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생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이 꾼 꿈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깊이 알려고 하기보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뭔가 특별한 내용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말씀에 보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만을 가르친 것은 그가 영적인 체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올라가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직접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고자 했다면 그보다 더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고, 생명을 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제쳐두고 다른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생명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더욱 더 힘써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꾸는 자들을 따라 다니지 말고, 뭔가 새로운 가르침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성경 말씀만을 꼭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제 3절부터 예수님의 말씀 중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다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을 차례로 말씀합니다. 그 첫째는 성도의 거룩함입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사도 바울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해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성도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뜻이으로써, 반드시 성도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적 의미에서 거룩은 죄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서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거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룩함이란 음란을 버리는 것입니다. 음란이란 성적인 타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적인 타락인 음란을 버리라고 하면서 그 예를 들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음란, 즉 성적인 타락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의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본문은 논쟁이 있는 구절입니다. “자기의 아내”라고 할 때, 이 아내는 사실 “그릇”이라는 단어입니다. 즉 자기의 그릇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그릇이라고 하면 뜻이 이상해집니다.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그릇은 상징적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는 그릇이 아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아예 아내라고 써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영어 성경 등을 보면 아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고 표현하고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몸을 대할 줄을 알고”가 됩니다. 

 ‘자기의 몸이 맞는 지, 자기의 아내가 맞는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인 거룩함이 그저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나 혹은 자기 아내를 대할 때 거룩하고 존귀함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말씀은 당시 성적으로 아주 문란했던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자기 아내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여자들과 성적인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이 가는 신전에 가면 몸을 파는 여인들이 그 곳에 있어서 종교의식으로 성관계를 맺는 일들을 흔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고 신자가 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바로 이러하였습니다. 아무리 신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성적인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자기 몸과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자기 몸과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여기지 않았을 경우 형제를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6절입니다.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만약 자기 아내 외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것은 자기 아내뿐만 아니라, 주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해하게 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두 사람의 죄라고 속삭이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해하는 큰 범죄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처럼 성적으로 자기 몸을 함부로 하고, 자기 아내를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이 죄에 대해 직접 신원, 즉 복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성적인 죄악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을 무시한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게 하심이니” 우리가 성적으로 타락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하는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의 복수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입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성적으로 타락하는 자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적인 타락을 피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그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에게 말로만 거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거룩하라고 불러주시지만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이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님은 말 그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육체의 욕심과 그 안에 있는 음란을 행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무엇을 통해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무엇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마음에 찔림을 주시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바울 당시와 마찬가지로 음란한 세상입니다. 얼마 전에 해외에서 기혼자들끼리 서로 만나게 하는 불륜 사이트가 해킹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때 수 만 명의 정보가 유출되었는데, 이 일로 몇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불륜 사이트의 구호가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 피우세요”라고 합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 더 오늘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불륜사이트의 구호처럼 인생은 짧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짧은 인생 마음대로 살다가 심판을 당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짧은 인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뜻이 거룩함인 줄 알고, 우리의 몸과 함께 우리의 배우자를 귀하게 여겨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늘 우리를 이끌어 주셔서, 거룩함의 열매를 늘 맺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