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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8/30,주일-오전) "오직 주만 바라볼지라!" / 시편 123편 1 ~ 4절 / 고한율목사

(8/30,주일-오전) "오직 주만 바라볼지라!" / 시편 123편 1 ~ 4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40장, 370장, 407장, 53장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게 됩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온가족 새벽기도회로 처음 모이게 됩니다. 온가족 새벽기도회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로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우리 은곡교회 온가족이 참석하는 기도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처럼 9월을 시작하면서 특별새벽기도회와 온가족 새벽기도회를 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로 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다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성도들이 같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 말을 하는 본토 출신 유대인들입니다.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말을 하는 해외에서 건너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남편이 없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과부들을 도와주었는데, 그만 헬라파 과부들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히브리파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브리파 과부들을 더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이에 교회가 과부를 돕는 일 때문에 양쪽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사도들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구제문제를 전문으로 담당할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교회의 영적지도자였던 사도들은 오직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해결책 중에 특히 두 번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갈등의 원인을 바르게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단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을 더욱 더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사도들이 오직 말씀과 기도에 힘쓰겠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 안에서 계속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문제없는 교회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도로 부름 받았지만, 아직도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이런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보니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교회 안에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하나, 하나를 해결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회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무엇일까요? 감기에 걸릴 때마다 좋은 약을 먹여서 빨리 낫게 하는 것이 분명 좋은 치료방법입니다. 하지만 제일 좋은 치료방법은 평소에 몸을 건강하게 하여 강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치료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과부의 구제문제로 갈등에 빠진 예루살렘 교회에 내린 처방도 이와 같습니다. 좋은 약만 준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갖도록 처방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인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 은곡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우리 교회 또한 최근까지 교회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 상처와 아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들을 따라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인 말씀과 기도에 온 성도가 힘쓸 때, 우리가 가진 어려움이 풀려지고,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우리 은곡교회가 정말로 건강한 교회로 든든히 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우리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말씀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께 나와서,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특별새벽기도회가 여러분에게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염려만 하고, 걱정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 기도에 자리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의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의 주제를 “오직 주만 바라볼지라”로 정했습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 때, 그것을 통해 결국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냐면, 오직 주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단순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단순히 문제의 해결방법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오직 주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직 주만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단단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23편 말씀은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오직 주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내일부터 시작될 한 주간의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세 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한 곳만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공군에서 일하셨던 한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규칙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눈보다 계기판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다 보면 바다 위를 운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과 바다가 헷갈리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합니다. 둘 다 파랗기 때문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헷갈리는 것이죠. 이 때 자신의 눈이나 느낌을 믿고 함부로 조종하다가 바다에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늘 위로 올라가려고 한 것인데, 사실은 그 위가 바다였던 것이죠. 그래서 조종사를 훈련시킬 때 반드시 계기판만을 믿을 것을 교육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만을 믿고 선택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우리가 경험한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오랫동안 비행하면서 경험하고,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하늘이라고 확신하면서 조종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늘이 아닌 바다였고, 결국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자기 자신이나 다른 곳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앗수르라는 강대국의 위협을 받던 남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쪽에 있는 앗수르라는 나라가 점점 더 세력이 커져서 남유다를 위협하게 되었을 때, 남유다 왕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는 이런 위협이 올 때 누구를 의지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신명기 28: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적군들을 누가 물리쳐 주시겠다고 말씀합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용사가 되어 친히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위협 앞에 남유다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애굽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이샤야서 3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남유다 왕과 백성은 무엇을 선택하였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애굽을 선택하였습니다.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은 오늘날 말로 하면 최첨단 무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유다와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보다 애굽의 최첨단 무기를 더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러 간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달려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가장 지혜롭고 확실한 방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31:3절입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애굽으로 달려가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돕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나 모두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시편 127편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될 뿐입니다”(1~2) 우리가 아무리 공을 들이고, 수고하고 애를 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신자인 우리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느 때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든든해 보여도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돈이나 권력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단 하나,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권사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수련회 둘째 날에 무섬마을이라는 곳을 잠시 방문하였습니다. 무섬마을은 내성천이라는 하천이 마을을 빙 둘러서 지나가는 그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성천에 사람이 건너가도록 다리가 놓여 있는데, 매우 특이하였습니다. 어떤 다리인가 하면 외나무다리입니다. 즉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아주 좁은 다리입니다. 

 신기하기도 해서 100m 정도 되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외나무다리라서 얼마나 좁은지 몸의 균형을 잘 못 잡으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물론 떨어져도 무릎 정도 오는 하천이라 그리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처음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로 앞만 보면서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앞만 보고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보면서 걸었다가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신자의 인생길이 마치 이 외나무다리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본다면 이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가장 복된 길입니다. 우리는 이것저것 쳐다보느라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도 애굽으로 달려가고, 돈으로 달려가고, 권력과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길을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갈 길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하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이 말씀은 신자가 현재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만사형통인 것은 아닙니다. 신자도 똑같이 병에 걸리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의 불화를 겪습니다. 이럴 때 신자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크게 고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 또한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 4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낙심하고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123편 1절 말씀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봅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바로 하늘에 계시는 주님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시는 주님”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자가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신다는 뜻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시편 1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계시는데, 무엇을 하신다고 말씀합니까?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즉 우리 인생 모두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115:3절입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늘 왕좌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시편의 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하늘 왕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 보고 계시며, 단지 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가 언제든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하나님이 모르시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는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언제나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 왕좌에 앉으셔서, 이 세상 모든 일을 보고 계시며, 그 뜻대로 모든 일을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소망함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였고, 회개하기는커녕 스데반에 대해서 분노하였고,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돌을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이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아무리 천사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단지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스데반이 이렇게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시간에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과 그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55절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자신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자신을 가장 복된 길로 이끄시는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할 능력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 왕좌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억울하고, 아프고, 슬프고, 애통한 모든 사정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때를 따라 우리를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만을 오직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은혜 베풀어 주실 때까지 계속해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또한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바라보아야 합니까? 2절 하반절에 보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까지 바라보나이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까지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저 한두 번 기도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억울한 사정이 있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아주 마음이 악하고 강퍅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과부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매일 같이 재판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이 재판장이 결국에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과부의 사정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같이 악한 재판장도 과부가 계속 매달리니까 사정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7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밤낮 부르짖는 신자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끝까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고, 몇 번 기도했지만 안 되더라 라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 가운데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신자는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곳에는 참된 도움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와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하늘 왕좌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되 끝까지 바라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간에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주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 온 성도들이 하늘왕좌에 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은혜 받을 때까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