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주일-오후) "바른 믿음의 헌신" / 갈 2장 20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546장, 321장
150823_바른 믿음의 헌신(갈 2잘 20절)_고한율목사.pdf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헌신은 “몸을 바치다” 혹은 “몸과 마음을 바쳐서 힘을 다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헌신을 기독교적으로 적용하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은 참으로 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신한다고 할 때 우리가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한 헌신의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한 번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어떤 한 학생이 제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과 학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지독하게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렇게 공부하면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며,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험 문제 하나 차이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와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자신은 정말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성경 읽고, 기도하며, 교회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거죠. 그러면서 그 마음속에 이렇게 자신이 노력하는데 분명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느냐는 거죠. 하나님이 당연히 자신을 도와주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면 이 친구와 같은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즉 하나님께 헌신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 결과로 나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헌신을 하나님께 대한 공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가는 우리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에도 잘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성경 인물 중 누구를 본받으라고 자주 말씀하십니까? 조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십중팔구 요셉과 다니엘을 가장 자주 말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헌신했더니 그 후에 어떻게 되었다고요? 둘 다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보다 더 확실한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반면에 자녀들에게 이사야나 예레미야, 사도 바울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들도 요셉과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인데, 왜 이들은 말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쫄딱 망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헌신한 대가로 평생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급기야 이사야는 순교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한 위대한 사도였지만 항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결국은 로마황제에 의해 처형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았음으로 그 결과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그 결과에 비추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헌신은 그 결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해서 모두가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똑같이 헌신해도 예레미야나, 이사야, 사도 바울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결코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되어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른 헌신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시면 이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히브리서 11장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으로 헌신의 삶을 살아서 모든 어려움과 역경에서 승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33-3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이 얼마나 신나는 내용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였더니 나라들을 이기고, 사자들의 입을 막고, 불의 세력을 멸하고, 칼을 피하고 적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헌신한 자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셔서 이처럼 큰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헌신의 당연한 결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여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35-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믿음으로 헌신하여 살았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심한 고문을 당하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돌로 맞고, 톱으로 켜고 칼로 죽임을 당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앞에 있는 말씀과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헌신의 삶이란 그 결과와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해서 모두가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헌신을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 내미는 거래영수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헌신했는데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3인데 한 번도 예배 빠지지 않고, 늘 기도하고 말씀 보았는데, 내가 원하는 대학 정도는 보내주셔야지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회 회장으로, 성가대원으로, 이렇게 저렇게 봉사했는데, 하나님이 그것 다 아시고 나에게 갚아주세요.”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결코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바라면서 헌신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니까 하나님도 무엇을 해 주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헌신은 무엇입니까? 오늘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헌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상반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헌신을 하려면 무엇보다 내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철저한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처형방법이었습니다.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만 주어지는 처형방법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몇 사람만이 보는 곳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집행됩니다. 뿐만 아니라, 죄수는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치와 고통을 함께 경험하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야 말로 한 인간의 죽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르게 헌신하게 위해서는 우리가 바로 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바르게 헌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며, 자신에게 더욱 헌신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지만, 그 목적은 바로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헌신하시는 분들 중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 헌신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을 때 비로써 바른 헌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코 예수님이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른 헌신의 모습입니다.
바른 헌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생각과 얼마나 다른가? 내가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제가 전에 중고등부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장 많이 잔소리했던 것이 “왕따의 친구가 되어라”입니다. 왕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말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렇게 못하겠대요. 왜냐하면 왕따의 친구가 되어주면 자기도 왕따가 된다는 거예요.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는 거죠. 헌신은 뭐예요?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거기에 순종하는 거예요. 자기는 지기 싫지만, 하나님의 뜻이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헌신은 결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요즘 중고등부 예배를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지각하는 것입니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일찍 예배 오는 것이 힘든 거예요. 부모도 교사도 안타깝지만 그러려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타협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헌신해야 할 문제입니다.
중등부 아이들을 지도할 때 예배시간이 9시였습니다. 찬양팀이 있었는데, 이들은 먼저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찬양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일찍 와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지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데 우리가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도전했어요. 그래서 8시 오도록 했어요.
그런데 찬양팀의 한 아이가 난감해 했습니다. 그 친구는 특목고를 준비하던 친구인데 토요일에도 새벽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어요. 8시까지 오려면 불과 2~3시간 자고 와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비록 와서 조는 한이 있더라도 맨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라고 도전했습니다. 중3 마지막까지 그렇게 잘 했습니다.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니까 더욱 더 믿음이 잘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헌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만큼 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내가 어리다고 자신을 제한하지 마세요. 내 형편이 이렇다고 핑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헌신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바른 헌신임을 우리 모두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헌신은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바른 헌신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할 때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나를 얻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산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새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내 안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의 삶이 주인이 되시고, 나의 삶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인으로 다스리실 때 비로써 우리는 바른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르게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통치는 어떻게 드러나게 됩니까? 그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육체 가운데 산다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모든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단지 우리의 마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생활, 사회생활, 친구와의 관계에서 모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할 때 그것은 꼭 교회 안에서만 하는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고, 교회 밖에서 하는 일은 세상에 헌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할 곳입니다. 예외 되는 곳이 없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생활을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즐겁게 했습니다. 그 때는 교회 일을 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1 때였습니다. 교무실이 청소담당 구역이라 혼자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에 종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종이를 그냥 놓아두고 그 주위만을 닦았습니다. 그것을 보시던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이렇게 건성으로 청소하면 되겠느냐” 이 말이 저에게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곳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내가 있는 모든 곳이구나.”
바른 헌신은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가 있는 어느 곳이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꼭 교회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느 곳이든지 예수님의 통치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헌신의 삶인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른 헌신의 삶을 계속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20절 하반절에 보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평생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내 안에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지만 이 헌신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헌신의 시작은 바로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는 헌신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멸망의 백성일 뿐입니다. 헌신은 고사하고 마귀의 자녀로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할 자들이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지극한 사랑으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버리시는 헌신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근거이고, 시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할 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일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헌신하면 사람들의 오해나 질시를 받기가 쉽습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하나님께 헌신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바보 취급당하기 딱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에 실망과 회의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살아가서 무엇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릴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심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을 내버리는 헌신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헌신의 열매가 우리 자신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전체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의 영광과 향기가 나타납니다. 비록 우리는 고통당하고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 학생은 공부로, 직업을 가진 분들은 자신이 하는 일로, 주부는 가정의 일로 각자 영역에서 주를 섬기는 헌신의 자세로 행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가셨던 헌신의 길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여 하나님이 받으시는 바른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헌신을 우습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이든지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시대라고 여겨지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하나님께 바른 헌신을 드리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고 복된 삶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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