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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8/16,주일오후) / "살전 강해(9) 바울의 기도" / 살전 3:11 ~ 13절 / 고한율목사

(8/16,주일오후) / "살전 강해(9) 바울의 기도" / 살전 3:11 ~ 13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250 장, 176 장

150816_3오후_바울의기도(살전3장11-13절)_고한율목사.pdf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세 가지를 기도합니다. 먼저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바울이 제일 먼저 기도한 것은 우리의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에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바울이 누구에게 기도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시라는 뜻과 함께 아버지처럼 늘 가깝게 계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언제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 때 단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달리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이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주 예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냥 예수라 부르지 않고 주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님이 되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말하라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뀝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지식이 많아지고, 기도를 많이 하고, 여러 봉사의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도 맞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자신이 죽고, 대신 예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라지고,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이 주신 경고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만 주님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사시도록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참된 우리의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1절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우리의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바울과 그 일행이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기도한 것은 자신이 가는 모든 길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발걸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가는 것도 자신의 계획이나 뜻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모든 발걸음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 바나바와 함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이때도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한 지역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6: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계속해서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소아시아 지역 안에서 옮겨 다녔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6:7절에 보면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의 영은 성령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계속해서 바울의 발걸음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이 나오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환상에서 마게도냐 사람은 바울에게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환상을 본 후에 바울에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10절입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왜 성령께서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게도냐 지역에, 지금으로 말하면 유럽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닫자마자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 11절에 보는 것처럼,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하시는 것을 바르게 깨닫고, 순종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지 않고,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 자기 원하는 대로 간다면 결국은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언 16: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앞일을 전혀 알 수 없는 위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길을 항상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가장 복된 길로 이끄실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바울의 두 번째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더욱 풍성해 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1: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라고 바울이 칭찬합니다. 또한 4:9절에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는지, 사도 바울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고 말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사랑이 넘치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단지 교회 성도들끼리만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람이 더욱 넘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끼리 하는 사랑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도 풍성해 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에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 고난을 받았습니까? 너희 동족에게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즉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뭐라고 기도합니까? 너희에게 고난을 주는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참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5:44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14절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12:17절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가르침을 따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서로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랑은 계속해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저 서로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4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못되게 굴고, 피해를 주고, 아픔을 준 그 사람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우리가, 또한 교회가 그런 사랑을 한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였던 목사님의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바울의 기도를 따라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주변에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한 주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용서의 마음을 주시고, 사랑의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세 번째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바울의 기도는 종말의 때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더욱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때문에 교회 안에 많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금이 아닌 한참 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5:3절입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재림이 멀리 있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재림은 마치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오듯이 갑자기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방탕한 삶을 사는 그들은 갑자기 찾아온 예수님의 재림 때문에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거룩함 가운데 흠이 없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바울의 기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바울이 살던 당시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약속하신지 2000년이 훌쩍 지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3:8~10절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이 있습니다. 다만 재림이 늦어지는 것 같이 여겨지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하도록 주께서 참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은 도둑 같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이 올 것을 분명히 믿고, 재림하시는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 설 수 있도록 늘 깨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임을 분명히 믿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실 것을 기다리며 이 죄 많은 세상 가운데 늘 깨어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권능의 팔로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오늘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한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기도는 또한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이고, 우리가 해야 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있음을 알고,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더욱 더 풍성해 지되,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을 알고, 늘 깨어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