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주일-오전) "교회 기초 다지기(8) : 예배" / 히브리서 10장 19 ~ 22절 / 고한율목사 / 찬송가 : 31장, 304장, 540장, 53장
150802-교회 기초 다지기(8)_예배_(히10장19-22절)-고한율목사.pdf
[ 히브리서 10:19~22 ]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러분,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이 구원하신 신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물론 예배당 안에는 믿지 않는 분들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분들이 예배 시간에 참석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배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이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의 특권을 가진 성도라고 해서 모두 똑같이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예배를 보는 분들, 다른 부류는 예배를 하는 분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운동 경기장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운동 경기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경기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선수들은 실제로 경기에서 뛰고 있지만, 관중은 그 경기를 단지 멀리서 바라볼 뿐입니다.
물론 관중들도 선수처럼 이기면 기쁘고, 지면 실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수가 느끼는 것하고는 완전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기에 직접 뛰는 선수만이 느끼는 감동과 감격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하는 사람과 예배를 보는 사람 사이에는 완전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배를 하는 사람은 실제로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배를 보는 사람은 그러한 일들을 그저 남의 일로서 볼 뿐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우리 은곡교회 모든 성도들이 단지 예배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예배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멀리서 무슨 일이 있는지 관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 한 가운데로 들어와 하나님과 만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내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예배 시간마다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인 예배에 대해서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배를 보는 사람이 아닌 예배를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과의 공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의 피를 힘입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뜻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 되고,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무엇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소에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지성소를 말하는 것으로,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에 그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율법과 성막이었습니다. 율법은 이제 애굽의 종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과 함께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막은 회막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뜻이 “만남의 천막”(tent of Meeting)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막 혹은 회막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만나기 위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막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이 성소와 지성소는 짐승 가죽으로 된 휘장, 즉 커튼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성소는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는 오직 일 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 그 해의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소는 말 그대로 가장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성소가 지극히 거룩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하나님을 직접 뵈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성소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19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바로 지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오직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힘입은 우리들,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어느 때에든지 직접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20절에 나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구약시대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짐승의 가죽으로 된 커튼에 의해 나뉘어져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커튼을 마음대로 젖치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 커튼, 그 휘장은 곧 예수님의 육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몸이 찢어짐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던 커튼 또한 찢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휘장, 커튼을 제거하심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가도록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야말로 구원받은 신자가 가진 가장 위대한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직접 하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성도들이 꿈도 꾸지 못한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지성소는 고사하고, 성소 밖에서 머물며 예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했던 제사장들조차도 커튼 때문에 지성소를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언제든지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갖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좋은 말씀을 듣는다거나, 혹은 좋은 성가를 듣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배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생각할 때 또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신자가 가진 특권인 것과 동시에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자이며,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3:21절에서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 찬송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신자를 구원하기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자이며, 구원자로 믿는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창조 목적이, 우리의 구원 목적이 바로 예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배라는 말 속에 담긴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원래 예배라는 말에는 “엎드리다”라는 뜻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종이 그 주인에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알고, 우리가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주일 우리가 이처럼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며, 우리의 구원자이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쁜 삶을 살면서 자꾸 이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한 감사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던 우리가 다시 예배에 자리에 나올 때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자와 구원자가 하나님이며,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예배를 통하여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일주일 중에 하루를 안식일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이 날에는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며,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자이며,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하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간이 여유롭고, 우리의 마음이 편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예배에 대해 너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고3이 되면 예배 나오지 않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신자인 부모조차도 1년은 공부만 하고, 대학 가면 그 때가서 열심히 신앙 생활하라고 말을 한다고 합니다. 주일에 어떤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전혀 고민 없이 예배에 빠집니다. 또한 예배에 온다고 해도 늦게 오거나 예배 시간에 잡담이나 딴 짓을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처럼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예배가 하나님의 요구라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예배의 태도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당시 평양 산정현 교회는 주기철이라는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훗날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시다가 순교하신 귀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당시 민족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조만식 장로님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 지각을 하였습니다. 이 때 예배 사회를 보던 주기철 목사님이 장로님이 지각했다 하여 예배당 뒤에 서서 예배하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따르는 조만식 장로님에게 젊은 목회자가 예배 중에 야단을 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던 성도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 때 조만식 장로님은 조용히 예배당 뒤로 가서 끝까지 서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 교회 앞에 나와서 성도들 앞에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장로로서 예배에 지각한 것을 회개한 것입니다. 이 회개로 말미암아 온 교회가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젊은 목사가 나이 든 장로님에게 그것도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는 그런 사람에게 예배에 지각했다고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사실 조만식 장로는 주기철 목사의 학교 은사이기도 했습니다. 즉 주기철 목사가 조만식 장로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젊은 제자가 스승을 야단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조만식 장로님이 참으로 겸손한 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조만식 장로님이나, 주기철 목사님 모두가 예배가 인간적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임을 알았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앞에서는 인간적인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형편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를 온전히 드리려고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죄 용서와 삶이 새롭게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방금 전 말씀드린 대로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에는 우리가 예배를 통해 받게 되는 두 가지 은혜가 나옵니다. 첫째는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뿌림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9절에서 본 대로 예배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피가 뿌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피가 어떤 역사를 일으킵니까? 우리의 악한 양심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죄 된 생각에 사로잡혀 일주일을 보내셨습니까? 여전히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악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말미암아 이런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우리가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안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이 있고, 그 만남 가운데 여러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피 뿌림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나올 때 우리의 악한 생각과 마음을 예배 가운데 예수님의 피로 씻겨 주실 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이 죄와 악하고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배 가운데 맑은 물로 씻음을 받게 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예배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받는 은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악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 전의 나와 예배 후의 내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전의 가졌던 무력하고, 어두운 내 모습이 예배 후에는 예수의 피로 깨끗해 질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활기차고, 밝은 모습으로 바꿔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충만히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변화돼야 할 부분들이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야지, 기도를 해야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지,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지, 남을 욕하지 말아야지, 술,담배를 하지 말아야지, 하나님께 영광되지 않는 것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받게 되는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피 뿌림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점점 더 죄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 참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합니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원래 뜻은 “확실한 믿음 가운데 있는 참된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바르게 드리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믿음과 참된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즉 예배하는 자는 무엇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배는 오직 신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 신자가 예배할 때,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하는 우리가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예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예배는 그저 보면서 즐기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가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찾으셔야 합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들이 쪽지를 찾기 위해서 샅샅이 뒤지는 것처럼, 그런 적극적인 자세로 예배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배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계속해서 찾으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적극적인 예배자를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 우리는 참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여기서 참된 마음이란 진리로 가득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대로가 아니라,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배를 더 풍성하게 드릴 수 있을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났을 때,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합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그 만남이 깊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 그 관계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면, 예배가 더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해져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더욱 풍성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점점 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 지고, 예배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욱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우리 신자의 의무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항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주시는 은혜를 누림으로 더욱 더 풍성한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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